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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영혼의 편지 vs 로댕의 연인 까미유 끌로델 - 悟付張의 冊vs冊

 

 

지난주에 예술의전당에서 전시되고 있는 고흐전을 다녀왔어요.

고흐의 불꽃 같은 열망과 고독한 내면을 책을 통해 접하고 도저히 전시회를 안 갈 수가 없었습니다.

 

짧은 생을 비극적으로 마감한 고흐는 무엇 때문에 그리 방황하고 번민하였을까. 관람객이 많아 다소 불편하였지만 고흐의 그림을 보는 동안 그의 예술혼이 살아 움직이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문득 또 한 명의 비극적인 삶을 살다 간 조각가, 로댕의 연인 까미유 끌로델이 떠올랐습니다. 거목과도 같은 스승, 로댕과의 운명 같은 사랑으로 30년 간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생을 마감해야 했던 까미유.

 

예술은 보는 이에게는 평안과 위로를 주지만 그것을 창작하는 예술가의 삶은 비참해져야 하는 건가요.

 


 

 

 


 

고흐의 삶은 피폐하고 저주스러웠지만 고흐는 다른 어느 예술가보다 사랑을 갈구했던 화가입니다. 고흐의 사랑은 대상을 따지지 않고 순수하였기에 엄격한 칼뱅파 아버지와 심각한 갈등을 겪게 됩니다.

 

그토록 추구하던 사랑이 잘려나가고 고흐는 모든 정열을 그림에 헌신합니다. 고흐에게 유일한 후원자이자 영혼의 동반자는 다름아닌 고흐의 남동생 테오였습니다. 고흐는 테오와 수백 통의 편지를 주고 받으며 얼마나 삶과 자연을 사랑하는지, 얼마나 남과 다른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지, 얼마나 고독한 영혼을 달랠 길이 없는지를 표현합니다.

 

고흐의 고독한 영혼은 그림으로 승화되고 이것은 후세에 영원히 기억되는 걸작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왼쪽 – 고흐의 동생 테오, 오른쪽 – 고흐의 초상화>

 

 

한편, 까미유 끌로델거장 로댕과의 운명적인 만남과 사랑을 통해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할 행운을 얻기도 하지만, 동시에 비극적인 삶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까미유와 로댕은 24살이나 차이 나는 제자와 스승관계이고 또 연인이었습니다. 까미유의 천재적인 재능을 알아본 로댕은 그녀를 가르치고 함께 창작 활동을 하며 그녀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개성이 뚜렷한 두 천재가 같은 작업장과 같은 손님을 오랫동안 공유할 수는 없었습니다. 또한 가정이 있는 로댕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요구하는 까미유는 부담스러운 존재였습니다. 결국 두 사람의 사랑은 파국으로 끝나고 버림 받았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까미유는 자신을 파괴하는 것으로 거장에 대한 가엾은 복수를 하게 됩니다. 영혼을 울린 화가, 그리고 못다 핀 꽃 한송이처럼 비극적인 삶을 살다 간 조각가.

 

그래서 이번 冊vs冊은 비극적인 삶을 통해 별처럼 빛나는 예술을 완성한 빈센트 반 고흐의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쟈끄 까싸르의 "로댕의 연인 까미유 끌로델" 으로 낙점했습니다~^^

 

 

 

 

 

 

고흐는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의 브라반트 북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서 맏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1890년 7월 29일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동생 테오에게 668통이나 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 책은 주로 동생과 나눈 편지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편지에서 고흐는 영혼의 동반자이자 동생인 테오에게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고 솔직하고 애정 어린 감정을 표현하였습니다.

 

이 책을 보면 고흐가 위대한 화가가 된 것이 깊은 생각과 폭 넓은 지식, 그리고 사랑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초창기에 고흐는 화가라는 직업에 대해 테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산책을 자주 하고 자연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다. 화가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평범한 사람들이 자연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사람이다.

 

또, 고흐는 평범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끊임없이 개척하여 나갑니다. 특히 그가 존경하는 화가 밀레의 영향을 받은 고흐는 그 시대 조류에 편승하지 않고 거침없이 앞서 나갑니다.

 

사람이 왜 평범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그건 세상이 명령하는 대로 오늘은 이것에 따르고 내일은 다른 것에 맞추면서, 세상에 결코 반대하지 않고 다수의 의견에 따르기 때문이다.

 

고흐의 이런 태도는 많은 사람들과 불협화음을 만듭니다. 생전에 고흐의 작품이 한 개 밖에 팔리지 않은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또한, 화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고갱과 협력을 꾀하였으나 결국 고갱과의 불화 때문에 자신의 귀를 자르는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결국 고흐는 심각한 경제적인 어려움과 정신병에 시달리다 37세의 젊은 나이에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정신적 물질적 후원자이었던 테오도 고흐가 사망하고 그 이듬해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어 사망합니다.

 


<고흐의 후기 대표작 – 아를의 밤의 카페>

 

 

 

 

 

까미유는 1864년 프랑스의 페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엄격한 아버지에게 훈육을 받아서 강한 의지력을 지녔으며 독서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녀의 첫 조언자이자 예술에 대한 기초 지식을 가르쳐 준 사람은 알프레드 부쉐(Alfred Boucher) 입니다. 그녀가 스무살 때, 로댕은 44살 때 둘은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그녀와 로댕의 만남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로댕은 단번에 이 젊은 예술가의 놀랄 만한 재능을 알아보았다. 까미유의 빛나는, 매혹적인 푸른 눈 또한 곧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까미유 또한 서슴지 않고 그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아름답고 우아한 조각품 제작이 우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거장 로댕과의 만남은 짧고 달콤한 사랑과 길고 비참한 비극의 서막이 됩니다. 마주보고 달려오는 기차처럼 두 천재의 창조성은 심한 충돌을 거듭하였고 거기다 로댕은 연인보다 가족을 선택하게 됩니다. 까미유는 로댕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예술혼을 불태우며 황금기를 맞습니다. 그때 그녀는 <끌로또> <왈츠> <수다쟁이들> 등 천재적인 작품을 선보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그녀에게 조각가로서의 삶은 척박하기만 하였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사회로부터의 고립은 그녀의 정신을 철저히 파괴하였습니다. 결국 천재적인 조각가, 내면을 조각한 제일인자로 칭송 받던 그녀는 말년 30년 동안을 감금되어 분노와 회한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녀의 억눌려진 천재성과 비극적인 일생은 그녀의 남동생이자 시인인 뽈 끌로델을 비롯하여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 재조명 됩니다.

 

이자벨 아자니가 여우 주연을 맡은 영화 '까미유 끌로델'은 우리 나라에서도 1989년에 개봉되어 인기를 끌었습니다.

 

 

 

 

 

 

 

우리는 거장의 예술품을 편안하게 감상하며 감탄합니다. 그러나, 그 예술품은 예술가의 영혼과 고통이 버무려져 탄생한 아름다운 결정체입니다.

 

최고의 경지에 이르기 위한 예술가들의 끝없는 자기 부정과 도전이 빚은 혼신의 산물입니다. 우리는 위대한 예술품과 예술가를 대하며 우리네 삶도 처절한 노력 없이 좋은 결과를 바랄 수 없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깨닫게 됩니다.

자신을 파괴하면서까지 최고의 작품을 만들고자 했던 예술혼시대가 지날수록 더욱 빛을 발하게 됩니다.

 

다음 이야기는 대통령 선거로 화두가 되고 있는 경제민주화에 대해 얘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