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탐방] 'OIMU' 사라져가는 것들에 포옹 오이뮤 ‘Oneday I Met You’
오이뮤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만든 젋고 당찬 이 여성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통해 사라져가는 것들 것 되살리려 한다. 영어 이니셜을 조합한 브랜드명 OIMU는 'Oneday I Met You'로부터 왔는데 여기서 디자인의 철학과 방향을 짐작할 수 있다. 신소현 디자이너는 첫 번째 작업으로 새로운 패키지 디자인의 성냥 제품을 선보였다. 베이직, 캠핑, 팔각, 여름 등의 콘셉트로 다양한 색상과 길이의 성냥에 모던하고 감성적인 성냥갑을 입혔다.
꽤 즉각적으로 돌아온 수요층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성냥머리와 성냥갑 옆구리가 마찰하여 활활 타오르는 불길처럼 열광적인 반응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성냥 산업은 저 장렬히 가라앉는 일몰의 모습처럼 저물어가는 것들 중 하나다. 일제강점기 때 도입되어 광복 후 전국으로 확산된 수백 개의 성냥 공장은 가스라이터의 등장과 중국 제조 시장에 밀려 이슬처럼 아스라이 증발했다.
사각 박스에 주황색 뚜껑의 '향로'로 유명한 성광성냥(경북 의성)도 끝까지 버티다 2013년 말 기계 가동을 멈춰 성냥 생산의 종식을 대대적으로 알렸다. 그 즈음 텔레비전에서 '폐업 위기의 성광성냥'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는데 신 대표의 촉이 거기에 꽂혔다. "그래, 바로 이거다 싶었어요. '디자이너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어요." 신 대표는 당시 디자이너로서의 사명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곧장 성광성냥 공장이 있는 의성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한껏 의기충천한 청년 디자이너의 기대와 달리, 한 때 400명의 종사자들을 거느렸던 공장은 존폐의 기로에 놓인 모습이었고 "이젠 기계가 멈췄어"라는 사모의 말에 신 대표는 하릴없이 되돌아서야 했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성냥 디자인에 대한 아이디어를 놓지 않았으며 틈틈이 시장 조사를 했다.
2015년 새해 목표로 '성냥 프로젝트'를 일 순위에 올린 신 대표는 기계가 멈췄다는 말에도 아랑곳없이 다시 성광 공장을 찾아갔다. 공장 측 입장에서는 다큐가 전파를 탄 후 전국 곳곳에서 찾아오는 다른 구경꾼들과 그녀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신 대표가 끈질기게 전화하고 찾아오는 통에 심심풀이로 그러는 게 아님을 알아봤는지 "사업해보고 싶으면 해 보라"는 격려의 말과 함께 당장 성냥 생산을 할 수 있는 천안 아산의 유엔성냥 공장을 소개해줬다. 팔각성냥갑으로 유명한 유엔상사에서는 생일 케이크 성냥 등 소량을 변함없이 생산하던 터였다. "왜 이제야 왔느냐"는 유엔상사 사장의 말은 신 대표에게 횃불을 밝혀주었다.
▲ OMIU×민음사×교보문고 콜라보인 작가 성냥 시리즈
불씨를 댕긴 뉴욕의 골목
그녀는 어째서 과거, 아니 '저물어가는 태양'에 꽂힌 걸까. 바로 뉴욕이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그녀는 3년간 다니던 직장인 현대카드를 그만두고 세계 문화의 아이콘 뉴욕으로 향했다. 무엇보다 세계의 예술과 문화, 디자인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그 중심에서 직접 체험해보고 싶은 욕구가 컸다.
모던과 포스트모던의 조합 속에 하늘을 찌르는 마천루 그리고 유리와 금속의 건축물들로 화려하기만 할 줄 알았던 뉴욕에서 그녀는 과거와 전통을 따듯하게 품고 있는 도시의 이면에 금세 매료되었다. "뉴욕 곳곳에 로컬 시장이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은 인상적이었어요. 다양한 지역 특산물들이 대중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고 시민들이 애정을 갖고 소비하는 모습을 보며 자극을 받았어요."
신토불이라는 단어까지 부각시키며 토종 제품 구매 운동을 벌여도 우리나라에서 토종이 대중, 특히 젊은 층을 그다지 움직이지 못하는 까닭은 신 대표는 "디자인이 약해서"라고 말했다. 토종 문화를 살리는 길은 디자인이 답이라고 단언했다.
그녀는 6개월간의 뉴욕 생활 후 요즘 가장 트렌디한 라이프 스타일 매거진 'kinfolk'의 제작을 돕기 위해 포트랜드로 향했다. 사실 kinfolk 사무실에서는 그녀를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이메일로 인턴 지원서를 넣었지만 답변이 없어 포틀랜드 사무실을 찾아가 에디터를 쫓아다니며 두 달간 kinfolk의 제작에 참여하며 소중한 경험을 쌓았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진짜 뜻을 알 수 있었어요. 만일 그 생태를 알고 있었다면 경험하는 데 주저했겠죠.
하지만 몰랐기 때문에 어떤 환경에서 제작해야지만 이런 잡지가 다 나올까 하고 궁금했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직장을 다니며 모은 돈 전액을 탈탈 털어 제법 두둑했던 지갑도 얇아지고 1개월 동안의 미국 생활을 접을 무렵 그녀는 한 가지 결심이 섰다. '우리가 가진 문화와 정서에 세련된 디자인을 입혀 고부가가치의 디자인 제품을 만들어보자' 하고.
신 대표는 불과 몇 개월 전 맨손으로 시작하던 때를 떠올렸다. "유통 채널이 제로(0)였을 때 제품 30개를 담은 가방을 메고 소품 편집숍들을 일일이 찾아다녔어요. 이메일을 보내고 기다리기보다 바로 실물을 보여주는 편이 더 효과가 있을 줄 알았죠."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성과 없이 제품을 그대로 들고 돌아오는 경우도 부지기수. 그래도 다행인 건 오이뮤처럼 성냥에 대한 감성을 가지고 있는 고객이 없지는 않았다. 홍대 앞 '오브젝트'가 첫 고객이 되었고 이어 연남동 '삼각관계'와 독립출판사들이 오이뮤에 손을 들어줬다.
발품을 팔면서 느낀 문제점을 개선해 마케팅을 보완했다. 소비자가 공감할 수 있도록 브랜드 스토리를 문서화하고 브랜드 가치를 명확하게 한 것. 반응은 확실이 있었다. 대형 출판사와 서점인 민음사와 교보문고에서 협업을 제안해와 '세계의 작가 시리즈' 성냥 제작을 기점으로 오이뮤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 OIMU×명동성당 기프트 숍 1898+ 콜라보인 명동성당 성냥 3종
일에 추진력이 붙자 신 대표는 과감하게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방배동 주택가에 작은 사무실을 마련했다. 퇴근 후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밤새워가며 손으로 성냥갑을 만들던 일은 이젠 추억거리다. 오이뮤는 명동성당과도 협업을 하여 명동성당 기프트 숍인 '1989+'에 오이뮤의 성냥을 입점시켰다. 성당의 모티브로 제작된 오센트와 수향의 제품들 사이에 오이뮤 성냥은 아주 좋은 짝꿍이다.
다음 세대에도 이어줄 디자인의 가치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2015년 영화 '인턴'은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도시 재생(Urban Regeneration)의 중심부인 뉴욕 브루클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실제로 브루클린의 맨해튼다리 아래 지역을 가리켜 '덤보(Dumbo: Down Under the Manhattan Bridge Overpass)'라고 부른다. 낡은 공장과 창고를 개조해 문화 지역으로 변모한 곳이다. 영화에서는 오랜 세월 인쇄 공장으로 사용되던 붉은 벽돌 건물이 잘 나가는 인터넷 쇼핑몰의 사무실로 개조된 모습이 나온다. 1900년대의 제조업과 2000년대 IT 기반의 서비스업을 극명하게 대치시킨다.
도시 재생은 쇠퇴한 도시 공간에 새로운 기능성을 제공하는 작업이다. 기존의 것을 파괴하고 완전히 새롭게 하는 재건축, 재개발에 익숙한 기성 세대에게는 공간에 대한 환기를 주는 개념이기도 하다. 도시 재생은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기는 하지만 기존에 도시가 안고 있는 과거를 품고 간다는 특징이 있다. 과거와 현재의 유기적인 흐름을 이야기하는 포용성 깊은 공간의 재탄생인 것이다.
오이뮤의 사업 방향은 이 도시 재생과 깊게 맞물려 있다. 사양 산업의 탄탄한 기술력과 현 시대가 요구하는 감각을 결합시켜 새로운 감성의 창조물을 만들기 때문이다. 성냥이라는 제품 자체는 대수로워 보이지 않을 수 있겠지만 시각을 조금 틀어 생산자와 지역 사회까지 들여다본다면 어떨까.
단절되어가는 기술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그 가치를 유지시키거나 더 큰 가치로 확장하며, 나아가 지역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이해할 것이다. 바로 도시 재생의 목적이다. 오이뮤는 말한다. "좋은 기술력이 있지만 브랜드가 없거나 디자인이 약해 그냥 흘러가는 중소기업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들과 협업해 토종 문화를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가고 싶다. 소비재뿐 아니라 다음 세대에까지 이어나갈 가치가 있다면 그 무엇이라도 오케이다."
작은 성냥개비의 불씨로 지폈지만 수 시간 생명을 유지하며 밥을 짓고 공간에 훈기를 더해주는 아궁이 속 불길처럼, 성냥 하나로 시작된 오이뮤의 작업이 사회에 따뜻한 공명(共鳴)으로 퍼져나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