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나라! 신성로마제국의 역사와 합스부르크 왕가, 발트슈타인 소나타 이야기 - 김남길의 베토벤을 읽는 남자
베토벤을 얘기하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고 싶었던 것이 있다.
"과연 베토벤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였다.
이것은 유럽 역사와도 크게 관련이 있기 때문에 베토벤에 관심이 없는 누구라도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베토벤의 조국! 독일은 어떻게 형성되었고 베토벤은 과연 자국에서 어떻게 살고 있었을지 지금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대신 Balance 핵심정리
• 베토벤의 나라: 신성로마제국의 마지막 왕가였던 합스부르크 왕가
• 베토벤의 배경: 신성로마제국의 제후국, 본에서 태어나 합스부르크의 수도 비엔나에서 공부
발트슈타인 백작의 후원으로 작곡에 전념, 발트슈타인 소나타 헌정
독일의 형성! 신성로마제국의 역사
베토벤은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제후국 출신으로, 신성로마제국의 본거지인 합스부르크의 수도 비엔나에서 음악을 공부했다. 베토벤이 살던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 신성로마제국에 어떻게 생겨났는지와, 합스부르크 왕가와의 관련성 등을 살펴본다면 보다 베토벤의 배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유럽인들의 로마제국에 대한 동경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은 "영국의 역사는 카이사르가 도버 해협을 건너서면서부터 시작되었다."라고 했다. 당시 갈리아 총독이었던 카이사르의 침략을 받아 영국(당시엔 브리타니아)이 전멸당한 것이 영국에 있어 오히려 축복이었다는 말이다.
이는 "제국주의 일본의 조선 침략이 우리나라의 근대화를 촉진시켰다"는 친일사관의 논리와도 유사한 주장으로 비춰질 수 있겠다. 하지만 당시 유럽의 상황은 우리와 분명 차이가 있다.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로마와 카이사르의 후계자를 자임하며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누군가 초인적인 인물이 나타나 로마제국의 영광을 재연하고 하나된 통일 유럽을 만들겠다고 하면 유럽인들은 열광적으로 그를 응원했다.
오죽했으면 "황제"를 뜻하는 독일어 "카이저", 러시아어 "짜르"는 모두 카이사르가 그 기원이 됐을까? 정작 카이사르는 황제 직분도 아니었는데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보여주는 부분이다.
나폴레옹이나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가 등장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유럽인의 특성이 내면 깊숙이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홀로코스트와 같은 터무니 없는 파쇼적 행위가 많은 이들의 지지 속에 용인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유럽인들의 무의식 속 로마제국에 대한 동경이 집단무의식의 한 유형으로 '태고유형화'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프랑크 왕국의 카를대제 등장
서기 380년에 그리스도교가 로마에서 국교로 인정된다. 그 후 십 수 년 만에 로마가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열되는데, 그 이후 100년도 못 가서 서로마는 멸망하고 유럽은 한동안 분열상태에 이른다.
그리고 서기 800년에 옛 로마의 식민지였던 갈리아 지역의 프랑크 왕국에서 카를대제가 등장한다. 그는 교황의 "그리스도교 전도와 교회의 안정적인 세속사회 지배"라는 목표에 부합했던 인물로, 교황으로부터 황제칭호를 받아 서로마 제국을 부활시킨다.
그리고 프랑크는 843년 서프랑크, 중부프랑크, 동프랑크 3개로 쪼개져 유럽사회는 다시 세속적(정치적) 구심점이 없어진다.
참고로 현재까지 프랑스와 독일은 프랑크 왕국이 서로 자기네 역사라고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다.
"프랑크" 하면 얼핏 "프랑스" 라는 말과 발음이 유사해서 프랑스 역사일 것도 같아 보이기도 하고,그러나 독일에 "프랑크푸르트"라는 도시가 있을 정도인 걸 보면 독일역사일 것도 같고, 참으로 애매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
신성로마제국의 성립
이후 936년에는 동프랑크에서 오토1세가 교황에게 황제지위를 인정받으면서 신성 로마 제국 건국을 선포하게 된다. 이로써 오토1세는 신성로마제국 첫 황제로, 유럽사회 제국을 통치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신성로마제국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헝가리는 물론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까지 유럽의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하며 옛 로마의 영광을 인수하게 됐다. 중세에서 근대 초까지 이어진 중부유럽 나라들의 정치 연방체로서 초기에는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였으나, 점차 여러 제후들에 의해 분할 상태가 되어 여러 번 혼란에 빠지게 된다.
신성로마제국의 쇠퇴
결정적으로, 1517년 마틴루터의 종교개혁은 제후국들의 독립을 가속화하는 시발점이 된다. 각개각층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고, 마키아벨리 같은 사람을 통해 이탈리아는 독립을 위한 이론적인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이러한 불안 속에 1616년 개신교와 카톨릭 간의 일종의 종교전쟁이라 할 수 있는 '30년 전쟁'이 발발한다. 신성로마제국은 유럽인들의 신뢰를 잃어, 로마카톨릭 교황에게 권위를 인정받아야만 존재할 수 있는 처지가 된다.
가문으로 편입된 신성로마제국과 '마리 앙투아네트'
이후 1700년 이전보다 더 강력한 독일민족의 강력한 제후국 중 하나로 프로이센 왕국이 탄생한다. 신성로마제국은 지금의 오스트리아 영내로만 국한되어, 지금의 오스트리아의 모태인 합스부르크 가문의 차지가 되고 만다.
신성로마제국의 합스부르크가문 출신으로 유명한 인물로는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루이 16세와 정략 결혼한 "마리 앙투아네트"가 있다. 당시에는 권력 승계를 위해 20대 남자가 40대 여자와 결혼할 정도로 정략결혼이 흔했다고 한다.
이렇게 합스부루크 가문의 전유물이 된 신성로마제국은 스페인, 프랑스, 벨기에, 독일 등 유럽 각지의 정략결혼 전략으로 세력을 넓히고자 했으나 결국 부활에 실패하고 만다.
급기야 신성로마제국의 딸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혁명으로 단두대에서 사형되는 치욕을 당하며 쇠퇴의 길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신성 로마 제국의 마지막 왕가였던 합스부르크 왕가는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다.
여기까지가 베토벤(1770년~1827년)이 살았던 당시의 시대 상황이다. 베토벤의 조국인 신성로마제국에 대해 더 궁금한 부분은 아래의 관련 서적과 독일의 연혁을 참고하길 권한다.
신성로마제국 추천서적
독일의 주요 연혁
연도 |
독일의 주요 연혁 |
395 |
로마제국 동서로 분열 |
476 |
서로마제국 멸망 후 한 동안 분열 상태 지속 |
800 |
옛 로마제국의 식민지 프랑크의 카를 대제 서로마 제국 부활 선언, 오랜 분열 마감 |
843 |
베르됭 조약에 의해 프랑크 왕국 셋으로 분열(서프랑크/중부프랑크/동프랑크) |
936 |
동프랑크 오토 1세, 교황으로부터 황제 대관, 왕국에서 제국으로!, 중세의 시작(?) |
1034 |
독일 왕조의 정식 국호로 “로마제국” 사용 |
1157 |
황제 프리드리히 1세 제후 소집령 국호로 “신성제국” 사용 |
1254 |
“신성로마제국” 국호 정식 등장 |
1517 |
마르틴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 시작 |
1616~1648 |
종교분쟁이 단초가 되어 독일 30년 전쟁 발발 |
1648 |
베스트팔렌 조약 통해 제국 붕괴 |
1700 |
프로이센 왕국 탄생 |
1745 |
합스부르크 가문의 마리아 테레지아의 남편 프란츠가 황제가 됨 |
1804 |
합스부르크 가문이 오스트리아 제국 프란츠 1세 황제가 됨 |
1805 |
오스트리아가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나폴레옹에게 패망 |
1806 |
신성로마제국 해산 선언. 이후 합스부르크 집안이 지배하는 오스트리아 제국은 1918년까지 존속 |
베토벤의 활동 배경
신성로마제국의 제후국 '본' 출신
베토벤은 신성로마제국의 라인강변에 위치한 '본'이라는 이름의 제후국 출신이다. 신성로마제국에는 여러 제후국이 있었지만, 본은 브란덴부르크 제후국 같은 제후국과 달리 엄청난 시골동네였다.
본은 독일이 동서독으로 분열되어 있던 시대에 서독의 수도이기도 하지만, 베토벤이 살던 때에는 정말 별 볼일 없는 마을이었다.
출처 : Vienna - "Beethoven-Haus"
베토벤, 합스부르크의 수도 비엔나에서 활동
시골마을 본에서 나서 자란 베토벤은 20대 초반, 신성로마제국의 본거지인 합스부르크의 수도, 비엔나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하이든에게 대위법(두 개 이상의 독립적인 선율을 조화롭게 배치하는 작곡 기술)을 배우게 된다.
비엔나는 그에게 단순한 도시가 아니었다. 그 동안 아버지에게 죽도록 얻어 맞으면서 배운 피아노 실력을 당대의 유명 음악가 모차르트와 대중들에게 선보일 기회였다.
출처 : Count von Waldstein
발트슈타인백작의 후원과 '발트슈타인소나타'의 탄생
물론 베토벤에게 비엔나행이 쉽지만은 않았다.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동생들을 부양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후원자가 생겼다. 바로 "발트슈타인"백작이다.
25살 무렵 발트슈타인 덕분에 경제적인 후원과 마음의 안식처를 얻은 베토벤은 이후 작곡에 전념할 수 있게 된다. 베토벤이 쓴 여러 피아노 소나타가 다 좋지만, 수작으로 빼놓을 수 없는 곡이 21번 "발트슈타인"이다. 발트슈타인 백작에게 헌정된 그 곡을 들어보자.
Piano Sonata No.21 in C Major Op.53 (Waldstein)
- 1악장. Allegro con brio
- 2악장. Introduzione. Adagio molto
- 3악장. Rondo. Allegretto moderato – Prestissimo
Piano Sonata No.21 in C Major Op.53 (Waldstein) 1악장. Allegro con brio
출처: 유튜브,Piano sonata in C major op. 53 ''Waldstein'' 1.- Allegro con brio
Piano Sonata No.21 in C Major Op.53 (Waldstein) 2악장. Introduzione. Adagio molto
출처: 유튜브, Piano Sonata No. 21 in C Major, Op. 53 "Waldstein", II. Introduzione: Adagio molto
Piano Sonata No.21 in C Major Op.53 (Waldstein) 3악장. Rondo. Allegretto moderato - Prestissimo
출처: 유튜브, Piano Sonata No.21 In C Major Op.53 `Waldstein` - III. Rondo (09:11)
오늘은 사라져 가는 신성로마제국의 암담한 현실에 대해 알아봤다. '베토벤 역시 "도대체 절대주의 왕정시대는 언제쯤에나 종결되고, 깨어있는 다수 국민의 지배에 의한 공화국이 탄생할 것인가?"하고 갈망하지 않았을까'를 상상하며 이번 글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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