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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필진 칼럼/공연/문화/육아

주말농부의 돼지감자 캐기 - 강병구의 증권맨이 가꾸는 주말농장

주말농부의 돼지감자 캐기 - 강병구의 증권맨이 가꾸는 주말농장




국화의 노란 잎을 따서 국화차를 만든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꽃잎을 다 떨구고 추위를 이겨낼 준비를 하고 있다.  

  


겨울이 되면 식물은 잎을 다 버리고 온전히 제 몸만 남겨 둔다. 따뜻한 날에 볕을 받아 몸을 키우고, 찬바람 부는 계절이면 다 내려놓는 것이다.  

  

  

사진 속 모습처럼 무성했던 잎도, 줄기도 온데 간데없고 앙상하게 다 말라 버렸다. 저 아래엔 뭐가 남아있을까?


주말 농부에게 딱 맞는 농사가 돼지감자 농사다. 비료 안 주고 풀 한번 안 뽑아도 잘 자라기 때문이다. 올해 심어 열매를 캐 먹고 나서 그냥 두어도 내년이 되면 또 다시 싹이 난다. 하지만 자칫 잘못 심게 되면 온 밭이 돼지감자로 뒤덮여 다른 농사를 못 짓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런데도 돼지감자는 내게 정말 고마운 작물이다.  

 

  

농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지도 벌써 5~6년이 되었다. 몇 년 전 친구와 막걸리 집에 간 적이 있다. 둘이 앉아 우리가 해보고 싶은 농작물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때마침 옆 테이블의 아저씨가 합석을 해도 되겠냐고 물어왔다.


막걸리 한 잔 하는데 둘이면 어떻고 셋이면 어떠랴. 혼자 오셔서 그런가 싶어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막걸리가 한 잔, 두 잔 늘어나다 보니 어느새 형님, 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다. 형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동생들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농사지으려고 하는 것 같아 농사 선배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동석하셨다고 한다.


남자 셋의 이야기가 무르익어가던 중 형님이 꼭 해주고 싶었던 얘기라고 하며 돼지감자 얘기를 꺼내셨다. 형님은 나에게 다른 거 생각하지 말고 사천 어느 들녘에 가면 수로둑에 돼지감자가 지천으로 널려있는데 그거부터 가져다 심어 올 가을 지나서 캐 먹으라는 것이다.


내가 술을 좋아하다 보니 지방간, 고지혈증, 당뇨, 고혈압이 있어 걱정인데 거기다가 살집도 있어 나에게 딱 맞는 게 돼지감자니까 다른 농사하기 전에 돼지감자부터 먹고 건강 먼저 챙긴 다음에 차차 다른 걸 해도 된다는 말씀이셨다.


그 얘기를 듣고 며칠 뒤, 형님이 알려주신 곳으로 가 돼지감자 몇 뿌리를 캤다. 형님이 알려주신 곳이 당연히 논두렁일 것이라 생각하여 자세히 물어보지는 않고 돼지감자 캐러 간다는 문자만 남기고 떠났다.


까만 비닐봉지에 조금 캐서 옮겨 심은 것이 벌써 5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심기만 했는데 해가 갈수록 돼지감자 농사 면적이 넓어졌다.


어떤 해에는 바빠서 수확을 못 하고 지나친 적도 있었지만 어김없이 그 다음해에는 돼지감자가 더 많이 나곤 했다. 동네 분들도 오가다 필요하면 캐 가기도 하고 그랬다.


작년에도 바빠서 못 캤더니 심어만 놓고 캐질 않으니 남 좋은 일만 시킨다고 할머니께서 역정을 내셨다.


돼지감자를 처음 심을 때만 해도 지금처럼 많이 알려지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알려졌다. 덕분에 돼지감자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도 많아졌다.


해는 어머니께서 돼지감자를 산다는 곳이 생겼다며 다 캐 보라고 하신다. 여태까지 돼지감자 농사를 지으면 내가 먹고 수확을 못 하면 그만이었지만 올해만큼은 다 캐기로 마음먹어본다. 역시 수확은 즐겁다.

  


굵은 줄기를 하나 들어내면 뿌리가 몇 개씩 달려 나온다. 곡괭이로 캐다가 허리가 아프면 엉덩이를 깔고 앉아 호미로 캔다. 감자가 주렁주렁 달려 나오니 처음엔 재미있었는데 한 시간, 두 시간 지날수록 중노동으로 바뀐다.

  


밀감 박스 서너 개 정도의 면적을 캐고 밀감 박스에 돼지감자를 넣으니 박스가 가득 찬다. 토요일에 늦은 아침을 먹은 후 두어 시간 만에 세 박스나 캤다. 꽤 많이 캤다고 생각했는데 밭을 보니 돼지감자를 캔 밭은 얼마 되지 않고 아직 파지도 않은 밭은 끝이 안 보인다. 일단 점심밥이나 먹고 보자.


우선 반찬 하려고 몇 개를 씻어 본다. 못 생긴 놈들. ㅎㅎ

  


횟집에 가면 나오는 마가 생각난다. 마처럼 참기름에 찍어 먹으면 어떨까? 한번 해 보는 거다.

  


사진을 찍을 땐 사람, 사물 가릴 것 없이 누구 옆에서 찍느냐가 중요하다. 컬러풀한 파프리카 옆에 나란히 놓여 있으니 돼지감자가 고급스러워 보인다.


심을 먹은 아들이 힘이 나는지 돼지감자 홍보 모델로 나선다. 아빠, 요렇게?

 

  

아니 좀 더 큰 거 들어봐!


  

요렇게? 아니 웃어야지!

  


아들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다. 저렇게 보니 돼지감자 줄기가 다섯 살인 아들 키에 두 배는 되는 것 같다.

  


빨리 캐야 하는데 아들이 저렇게 포즈를 취하고는 돼지감자를 자루에 던져서 넣어보란다. 나는 일을 하러 왔는데 아들은 전혀 아닌 것 같다.


아들 뜻대로 돼지감자를 자루에 던져 넣다가 그만 아들 이마에 잘못 던졌다. 이마에 돼지감자를 맞고 울더니 돌을 집어 하나 둘 던지다가 이내 시냇물에 퐁당 던지더니 까르르 웃어버린다. 방금 전 울음은 온데간데없고 시냇물에 돌 던지기 놀이 하자고 한다. 아들 성화에 못 이겨 물수제비 놀이를 하니 오늘도 하루가 다 갔다.

  


돼지감자를 전부 수확하고 나니 두 광주리가 나왔다. 토요일, 일요일 이틀에 걸쳐 작업한 양이다. 일이라고 생각하면 하기 싫고 귀찮아 지지만 누군가는 해야겠지.

  


돼지감자 농사는 돈 안 되는 일이지만 이런 고단한 노력이 있어야 누군가의 입에 들어갈 수 있다. 아들이 나중에 커서 아빠하고 이런 일을 했다는 것을 기억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고 계신 많은 분들에게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