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Taste]
한들한들
길을 나서다
연남동 무작정 여행
그런 노래가 있다. "강남 너무 사람 많아 / 홍대 사람 많아 / 신촌은 부족해" UV의 '이태원 프리덤'이다. 강남, 홍대, 신촌을 거쳐 최근 뜨고 있는 이태원 경리단길을 이야기하는 이 노래의 제목을 이렇게 바꾸자. '연남동 프리덤'으로. 경의선 숲길이 조성된 후 기하급수적으로 핫하게 뜨고 있는 연남동. 하루 동안 골목 사이사이를 무작정 누비며 몸소 체감한 연남동의 진솔한 모습, 궁금하지 않은가?
글 강초희│사진 권윤성
AM 11:00, 오래된 기찻길 따라
'빌딩 숲 속의 진짜 숲'. 경의선 숲길을 이렇게 소개하고 싶다. 기차가 다니던 노선을 따라 만든 공원이라 폭은 넓지 않지만, 그 점이 바로 경의선 숲길의 매력이다. 그저 홍대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두었을 뿐인데 완연히 다른 세상 같다. 얕은 실개천에는 잉어가 헤엄치고 물 표면에는 소금쟁이가 떠다닌다. 실개천을 따라 걷다 보면 곳곳에서 경의선 100년의 흔적을 마주치기도 한다.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철도인 경의선은 일제강점기, 남북전쟁, 분단 속에서 운행과 중단을 반복하다 종래에는 서울~문산 간의 52.5km만 운행 중이다.
그마저도 몇몇 구간은 광역전철이 개통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졌다. 그런 폐철도가 서울시 도시 재생 프로젝트로 총 연장 6.3km, 폭 10~60m의 도심 숲길로 재탄생, 자연과 도시 문화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 되었다.
길게 늘어선 메타세쿼이아, 졸졸졸 흐르는 실개천, 산책 나온 애완견이 뛰노는 잔디밭, 삼삼오오 짝을 짓거나 홀로 길을 걷는 사람들. 경의선 숲길은 도심에서 뚝 떨어진 외딴 공간이 아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도심 속 공간이다. 숲길 가외로 주택과 아파트 단지가 즐비해 있다 보니 어디선가 '찾아온' 이들의 느낌이라기보다는 여기서 '사는' 이들의 느낌이 강하다.
PM 1:00, 골목길에 들어서면
경의선 숲길에 뻗어 있던 수많은 좁은 골목길 중 한 곳으로 들어서자 또 한 번 완전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경의선 숲길이 내가 가야 할 방향과 걸어온 방향이 확연하게 구분되었다면 이곳은 시공간의 개념이 아예 사라져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딘지조차 확신이 서지 않는다.
당황한 것도 잠시, 그저 발이 닿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정처 없이 걷기로 했다. 목적을 가지고 걸으면 걸을수록 헤매는 곳이 골목길이지 않은가. 그렇게 뚜벅뚜벅 걷다 마주한 가게가 복합 편집 숍 '어쩌다 가게'다. 2층 단독주택을 리노베이션해 만든 이곳은 카페 'b-hind'와 더불어 예약제로 운영하는 1인 미용실 '바이 더 컷', 실크 스크린 공방 '에토프', 독립 출판 서점 '별책부록' 등이 입점해 있다. 공간 활용이 꽤 독특해 둘러보려 했으나 이게 웬걸. 2층 공방은 대부분 문이 잠겨 있었다. 연남동의 가게들은 느지막이 문을 연다더니, 허탈하면서도 '아, 여기가 진짜 연남동이구나' 싶은 재미가 느껴지는 건 왜일까.
결국 다시 골목길이다. 털레털레 길을 걷다 특이한 외관의 레스토랑을 발견했다. 단독주택을 빈티지한 느낌으로 개조해 만든 '더 다이닝 랩'이다. 어쩐지 익숙하다 싶어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곳에 오기 전 알아보았던 연남동 맛집 리스트 중 하나다.
2013년 가을 무렵 오픈한 이곳은 원래 테이블이 서너 개밖에 되지 않은 작은 공간이었다.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자 최근 확장 이전을 했다고. 더 다이닝 랩의 대표 메뉴는 스파이시 파스타와 랩 버거다. 어떻게 보면 흔하디 흔한 메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기는 연남동이다. 스파이시 파스타는 매콤한 맛이 강한데 여기에 달걀 반숙을 풀어 섞어 먹는 '방식'이 쏠쏠하다. 또 랩 버거는 저온 조리를 한 소고기에 밴 양념이 짭짤하면서도 특이하며 어쩐지 맥주가 끌리는 맛이다. 맛있는 음식으로 배도 채웠겠다, 이제 연남동의 마스코트인 동진시장을 향해 힘차게 걸어봤다.
PM 3:00, 연남동의 정점
솔직히 말하자면 굉장히 헤맸다. 동진시장은 연남동과 동교동 사이에 있는데, 골목골목을 누비고 나서야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홍대가 미술과 음악의 거리고 출판단지였던 합정이 문학의 거리라면 연남동은? 홍대와 합정의 예술 분야를 총망라할 뿐만 아니라 건축, 영화, 수공예 등이 옹기종기 모인 곳이다. 그리고 이러한 연남동의 정체성의 정점을 찍은 곳이 바로 동진시장이다. 지금은 사라진 강남의 정동상가시장이나 신촌 현대백화점 건너편에 있던 상가 시장을 기억한다면 동진시장 역시 그와 같은 구조라고 상상하면 된다.
동진시장은 입구가 여러 곳이다. 미로 찾기를 한다는 마음으로 자세히 살펴보아야 입구를 가리키는 나무 문패를 발견할 수 있다. 낡은 실내는 노란빛의 조명, 각종 포스터와 플래카드, 독특한 크래프트와 어우러져 빈티지한 분위기를 풍긴다. 금요일 저녁(17:00~21:00)이나 주말(13:00~19:00)에 프리마켓이 열리는 동진시장은 각종 액세서리, 향초, 꽃으로 만든 제품, 옷, 가죽 제품 등을 판매하고 있다.
규모가 크지 않다 보니 셀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는 것도 동진시장만의 매력. 또한 각종 소규모 전시회를 열 뿐만 아니라 인디 밴드 공연도 진행하고 있다. 더불어 악몽을 쫓아준다는 인디언의 행운의 부적, '드림캐처'를 파는 '천가계 바람'도 꼭 들러보길 추천한다. 굳이 '강추'하지 않아도 그 가게 앞을 지나치면 진하게 풍겨오는 향기에 걸음이 멈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의선 숲길부터 연남동 골목
구석구석까지
이 모든 이야기를 담지 못해 개인적으로 무척 아쉽다. 이곳으로 떠나려는 이들에게 한 가지 조언을 해주고 싶다면 역시나 '계획 없이 가라'다. 연남동은 연남동만 케어하지 않고 그 근처 일대까지 널리 분포돼 있으며 주택가라는 지리적 특성상 헤매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날 문득 반복된 일상에 지친 나에게 일탈의 기회를 주고 싶다면 떠나라, 연남동으로. 그곳에 길이 있다.
우리가 연남동 골목을 헤매다 발견한 보석 같은 장소들을 몇 곳 추천한다. 말하지 않았던가. 골목길의 매력은 헤맴에서부터 시작한다고.
1. 1984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따온 이름처럼 독립출판사 겸 카페다. 아기자기한 소품 및 디자인 패션도 다루며 작은 전시회도 종종 여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주소 : 서울 마포구 동교로 194
문의 : 02)325-1984
2. Place MAK
풍요로운 삶을 위한 독립 예술 공간. 작가들의 참신한 작품들을 무료로 만나볼 수 있는 공간으로 작지만 따뜻함이 느껴진다.
주소 : 서울 마포구 동교로 263-6
문의 : www.placemak.com
3. 낙랑파라
동진시장을 찾아 헤매다 목이 마른 우리에게 쉼터가 되었던 카페. 커피 맛도 커피 맛이지만 1930~1970년대 빈티지 제품을 전시·판매하고 있는 연남동 대표 카페다. 지하에도 공간이 있음을 유념할 것.
주소 : 서울 마포구 연희로1길 21
문의 : 02)538-1197
4. Carta 19
와인 포차&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경의선 숲길 가외에 위치해 있다. 대표 메뉴는 스페셜 피자, 오믈렛, 해산물 파스타, 리코타 치즈 샐러드다. 경의선 숲길의 전망을 관람하며 와인과 이탈리아 음식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게 이곳의 키포인트.
주소 : 서울 마포구 동교로 227-1
문의 : 02)323-0406
5. 피노키오 책방
동네 서점이 사라져가고 있는 요즘, 노란 간판을 걸고 아직까지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소규모 서점이다. 소규모 독립출판물, 혹은 인디 북이라 불리는 비주류 책을 다루고 있으며 다양한 그림책도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이다.
주소 :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 194-11
문의 : 070-4025-9186
6. 천가계 바람
머리맡에 두고 자면 악몽을 걸러준다는 '드림캐처'부터 아로마 향, 니트 제품, 목걸이, 팔찌, 스카프 등 다양한 제품을 파는 가게. 하나같이 보헤미안 풍이 묻어난다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 가게 분위기 역시 나른하다.
주소 :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 200
문의 : 02)334-9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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