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건축,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주교좌성당 이야기 - 신정은의 건축학개론
이번에는 종교건축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볼까 해요. 여러분이 정기적인 시간에 기도를 드리는 그 장소.
기도와 명상과 더불어 그 공간에 대한, 공간이 존재하기 이전의 기록에 대한 생각들을 한번쯤은 해보셨을 거에요.
저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건축에 있어서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장소가 그곳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맞닥뜨린 첫 장소에 대한 소개는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주교좌성당 이에요. 덕수궁에 들러다 광화문 방향으로 슬슬 걸어오다 보면 대로변에서 살짝 숨은 성당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첫 건축답사를 시작했을 때 함께 동행했던 분이 광장건축에 근무하는 분이었는데요. 이 성당과 의미가 있어 제게도 좋은 의미였던 장소입니다.
이 건물은 1978년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제 제 35호로 지정될 만큼 유서가 깊은데요. 영국교회의 벤슨 캔터베리 대주교로부터 주교로 임명되어 한국에서 선교를 시작한 코프가 인천에 온 것은 1892년경.
이듬해 부활주일에 인천과 서울에서 선교를 시작했어요. 1922년 제3대 주교인 조마가 주교가 이 교회를 착공했는데, 설계자는 영국왕립건축학회 회원인 딕슨이라고 합니다.
1926년 5월 2일에 1단계로 준공되었는데, 이듬해 성당 일부를 개조하기 위해 다시 서울에 온 설계자의 기록에 따르면, 세인트메리 앤드 니코라스 성당으로 이름 붙은 이 건물은 아직 미완성으로서, '언제 완성될 것인지 지금 예측할 수 없다"고 했답니다.
대한 성공회 서울대성당 안내 팜플렛을 보면, 이 미완의 성전은 1996년 5월 2일에야 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는데, 1991년 선교 백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그 완공을 계획하던 가운데, 1993년 7월 영국의 작은 시골 렉싱턴 도서관에 근무하던 영국인 관광객으로부터 설계도면의 출처를 알게 되어 이 일이 가능했다는 것이에요.
현재 성당의 모습이 기능적으로나 미관적으로 더 훌륭하다고 생각됨은 아마 직접 보시면 가슴으로 아시게 될 거에요. 그 아름다움을 더하는데 우리나라 건축가 김원 선생님이 참여했음을 답사 때 함께 보았던 광장건축 직원이 이야기를 해주었지요.
실로 성당 초입부분에는 한국인 건축가의 업적이 새겨져 있었지만 김원 선생님의 요구로 이름은 빼놓게 되었다고 합니다. 실로 감동적인 성당인데 말이에요
모두 11개의 탑을 갖춘 이 한국 유일의 로마네스크양식 건물은 동쪽에서 본 모습과 북쪽에서 본 모습이 중앙 종탑을 중심으로 각각 특색을 나타내게 돼요. 건물 기초부나 뒷면 모두, 그리고 처마 밑이나 기둥은 강화도산 강화석으로, 나머지 벽체는 붉은 벽돌로 되어 있는데, 스페인식 붉은 기와가 인상적이에요.
종탑부는 중앙의 큰 종탑과 그 앞의 작은 종탑이 공간적으로 위계성을 띠어 율동감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을 받는데요.
설계자는 여기에 2톤짜리 종을 매달았어요. 영국의 로프 바우로회사에서 주조한 것으로서, 영국에서 가장 뛰어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답니다.
이정구 신부에 따르면, 1833년 당시 신과학과 자유주의가 교회의 신앙을 파괴하고 있는 것에 대항하고자 옥스퍼드 대학생들과 신학자들이 모여 신비적인 중세 예전을 회복하고자 했다고 해요. 그러면서 교회건축에서는 네오고딕 양식을 선호했다고 합니다.
이 운동의 계승자였던 트롤로프가 로마네스크 양식을 택한 것은 딕슨의 권고에 따른 것인데, 로마네스크 양식이 고딕보다는 덕수궁 터의 스카이라인에 어울리고 경비가 적게 들며, 한국의 성공회 선교 초기를 상징하듯이 서양 초대교회의 순수함과 단순함을 지니기 때문이라고 해요.
또 하나 기록할만한 일은 1970년대 이후 민주화의 한복판에서 사회정의와 인권회복의 중추적 역할을 해냈다는 사실인데, 1987년 6월 10일에는 '군부독재 타도와 민주쟁취를 위한 범국민대회'가 이곳에서 열려 한국 민주화의 산실이 되기도 하였어요. 지금도 교회 한모퉁이에는 이를 기념하는 작은 비석이 놓여 있어요.
종교인이 아닌 제가 보더라도 그 의미와 역사가 마음에 와 닿았는데요. 혹시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덕수궁 나들이 하실 때 한번 들러보세요. 숙연한 마음으로 자신을 또 한번 되돌아 보는 성숙한 사람이 되어 버릴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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