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지금부터 여러분과 함께 동, 서양의 다양한 미술작품을 선보일
미술세상의 '대신바라기' 사원 장규리입니다.
오늘은 다양한 과학적 지식과 역사적 경험이 녹아있는
'인간이 빚어낸 아름다운 창조물' 도자기,
그 중에서도 일찍부터 자기 강국으로 이름났던
중국의 색, 유(색깔이 있는 유약을 바른 도자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중국인에게 도자기라는 용어는 매우 각별합니다.
현대 프랑스에 비견될 정도로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 였던 중국은
각양각색의 도자기를 생산했으며 이는 타국인의 열망과 찬미의 대상이었습니다.
특히 중국 역사상 손꼽힐 정도로 개방적이고
융성한 제국이었던 당에서 제작된 명품인 '당삼채'는
오늘날의 샤넬 백처럼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이면
누구나 소장하길 원하던 도자기였습니다.
[이미지 출처: www.chanel.com, en.chnmuseum.cn]
618년 건국된 제국, 당은 곧게 뻗은 도로, 잘 정비된 운하 등
중추적인 국가 인프라가 완비되고 국경지역이 정비되면서
내외정세가 크게 안정되었습니다.
이런 상황과 더불어 무역이 증가하고
타국과의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당나라는 전무후무한 태평성대를 누리게 됩니다.
당시 수도 장안은 100만에 달하는 엄청난 인구와
규모 면에서 동아시아 최고의 상업과 문화, 정치의 중심지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남북으로 전개된 주장 대로와 좌우로 펼쳐진 넓고 곧은 길,
잘 정돈된 저잣거리는 온갖 산해진미와 이국적인 볼거리로 넘쳐났습니다.
장안 시내는 불교, 도교, 이슬람교,
불을 숭상하는 조로아스터교에 이르기까지
온갖 신들을 모시는 사원들이 건립되었는데,
조로아스터 교도들, 마니 교도들, 기독교의 한 종파인
네스토리안 교도들 등 다양한 종교인들이
자유롭게 종교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이민족 출신 도공들과
예능인들이 물건을 만들거나
일거리를 찾아 시내를 배회하는 모습도
수도에서는 흔히 목격할 수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이런 과정 중 도입된 이국의 미감은
당나라 때 만들어진 대부분의 미술품에서 반영되었는데
이는 도자기 제작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일찍부터 다채로운 도자기를 생산하면서
명실공히 최고의 자기 생산지로 이름났던 중국의 그릇문화는
당나라 시대부터 더욱 빛을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미감이 반영된 이국적인 도자기 출연에는
대외무역의 증가로 동전의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동' 소재 그릇들의 사용이 금지된 것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제작된 도자기 '삼채'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본래 녹색, 황갈색, 남색 등 세 가지 색을
하나의 조형에 표현하는 기법에서 그 명칭이 유래하였습니다.
오늘날 한 가지 색깔만 입혀진 일채,
두 가지 색깔이 표현된 이채로 부르며
세 가지 이상의 다양한 색감이 표현된 자기,
즉 오채를 흔히 삼채라 칭하기도 합니다.
당삼채에는 동, 철, 망간, 코발트 등의 광물성 안료를 바탕으로
황색, 녹색, 적색, 청색 백색, 갈색 등 다채로운 색감과 문양이 묘사되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cafe.naver.com/winnerkk]
그릇 표면에 문양이나 그림을 명확하게 표현하고
선명한 색감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모양에 하얀색 태토를 입힌 후
색깔이 가미된 유약을 입혀 그릇의 질감을 더 밝게 만들었는데,
이러한 표현방법은 이미 중국에 도입되었던 유약을 입히는 기법과 맞물려
당시 상류층의 이국적이고 호사스러운 취향을 반영한
'윤이 나는 도자기'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당삼채는 실용성 있는 도자기는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1,000℃에서, 다음에는 800℃에서 두 번 굽는 기법을 통해
견고함에 관한 문제점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었지만
이후에 제작된 단단하고도 실용적인 자기들에 비해
그 기벽이 연약하여 쓰임새가 한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색채의 아름다움과 뛰어난 사실성에도 불구하고
견고함이나 내구성 면에서 다소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삼채는 생활 용기로 이용되기보다
귀족이 죽은 후 함께 넣어지는 부장용 도자기, 즉 명기나 부호의 집에 놓여
그들의 부를 과시하는 귀중한 장식품으로서 기능하였습니다.
당삼채 중에서는 잔, 병과 같은 일반적인 그릇 모양도 있었지만
대부분 사람이나 동물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들이었습니다.
당시 장인들은 삼채 수요층의 요구에 부응하여
문인이나 무인, 귀부인, 혹은 이국인이나 낙타 등
당대 실제로 존재하던 인물, 동물을 도기로 재현하였습니다.
특히 당나라 초, 중, 후반에 따라서
처음에는 가녀리고 작은 몸집으로 묘사되었던 미인상이
후기로 갈수록 풍만하고 둥글둥글한 곡선미를 지닌 미인의 모습으로 변모하였습니다.
이러한 표현방식은 시기에 따라 변화한
당나라의 미인에 대한 기준을 반영한 것으로
당시 중국의 풍속과 사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합니다.
[이미지 출처: en.chnmuseum.cn]
당시 권력과 부를 소유하고 있으면서
유행에 민감했던 지배층, 혹은 트렌드세터들은
삼채를 구입하고 집을 장식하면서 생활의 윤택함을 과시하였습니다.
그러나 가정용이건 부장용이건 간에
그 쓰임새가 한정되어 있던 이 아름다운 자기는
훗날 단단함과 실용성까지 함께 갖춘 새로운 그릇들이 등장하고,
안녹산(安祿山)의 난을 시작으로 당나라의 정세가 기울게 되면서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진정한 국제화의 산물, 당삼채에는 국가 간 교류가 활발하고
인적, 물적 자원의 이동이 잦은 오늘날의 현대사회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코스모폴리탄적인 창조성이 깃들어 있습니다.
최근 도래한 세계경제의 위기와 급격히 변화한 국제정치의 흐름은
지구 상에 '새로움'과 '변화'를 몰고 왔으며
우리에게 기존에 가지고 있던 사고방식을 전환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이라 종용하고 있습니다.
개방성과 호방함으로 명품을 창조해낸 당나라 사람들처럼
나와 다른 것, 익숙하지 않은 미지의 것에 대해
열린 사고와 관용적인 태도를 바탕으로 창조적인 사고를 하는 자세가,
바로 대한민국 금융계의 최고 명품기업으로 도약할
대신人으로서 가져야 할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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