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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를 휩쓸며 역사를 뒤흔든 전염병 – 페스트, 스페인 독감, 천연두

전세계를 휩쓸며 역사를 뒤흔든 전염병 – 페스트, 스페인 독감, 천연두



오늘로 국내 메르스 확진자가 5명 늘어 총 150명, 사망자가 2명 늘어 16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이처럼 수그러들 줄 모르는 메르스의 기세로 인해, 사회적 분위기가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한데요.

 

인류의 역사는 '바이러스와의 투쟁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많은 전염병과 끊임 없이 싸워왔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페스트, 스페인 독감 등 역사를 뒤바꿀 만큼 많은 희생자를 낸 전염병들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Balance 핵심정리 

∙ 중세 유럽의 대재앙 '흑사병'

: 페스트균에 의해 발생, 14세기 4천만명의 유럽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전염병

∙ 인류 최악의 재앙 '스페인 독감'

: 1918년에 처음 발생해 2년 동안 전세계에서 2500만~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 간 독감. 페스트유행 때 보다 훨씬 많은 사망자가 발생해 인류 최대의 재앙으로 불림

∙ 인류가 박멸한 최초의 질병 '천연두'

: 천연두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 전염력이 매우 강하고, 예전에는 대유행을 되풀이하여 많은 사망자를 내기도 했으나 19세기 이후 백신이 보급된 후 사라짐


 중세 유럽의 대재앙, '흑사병' 

인류의 전염병 역사를 이야기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병, 바로 '페스트'입니다. 아마 다들 중세 시대 유럽 인구의 절반에 달하는, 무려 4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무시무시한 전염병으로 익히 그 이름을 잘 알고 계실 텐데요.

 

흑사병의 전파 경로

1346년 크림 반도 남부 연안의 도시, 페오도시야를 공격하던 몽골의 기마병들이 흑사병에 걸려 죽은 병사의 시체를 성벽 너머로 던진 것이 유럽 내 흑사병 유행의 시작이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입니다.

 

도시 전체에 흑사병이 창궐하고, 살아남고자 도시를 떠난 사람들은 무역 항로를 따라 흑해를 거쳐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로 향하게 되는데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페스트균 역시 그들과 함께였습니다.

 

페스트는 1347년 이탈리아를 무서운 기세로 휩쓸고, 이듬해 프랑스, 영국, 그리고 1350년에는 북부 유럽을 거쳐 아이슬란드와 러시아로까지 퍼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집트,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를 건너 막 1억을 돌파했던 중국의 인구를 반토막 내기도 했죠.

 


<유럽의 흑사병 전파> / 출처: 위키백과 '흑사병'

 

흑사병으로 인해 죽은 사람은 적게는 8,000명에서 2억여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 번 흑사병이 발병한 지역은 인구가 절반 정도로, 많게는 80% 이상이 줄었다고 하죠.

 

사람들이 더욱 공포에 떨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이 질병에 대해 아는 것이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을 텐데요. 치료법은 물론이고 어디서 이 병이 시작되었지, 어떻게 감염이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고, 알 수 있는 것이라곤 오로지 증상뿐이었습니다.

 

특히 피부가 괴사하며 온 몸에 검게 변하는 증상 때문에 'Black Death', '흑사병'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흑사병이 급격히 전파된 원인

페스트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엄청난 전파력을 보였던 까닭은 무엇일까요?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겠지만 크게 활발한 무역활동, 비위생적인 도시 환경, 그리고 병에 대한 사람들의 무지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흑사병을 막기 위한 여러 방안

당시 국가들은 저마다 페스트를 막아보고자 즉각적으로 이러저러한 방안을 생각해 냈습니다. 런던은 흑사병 환자를 막기 위해 성문을 걸어 잠그기도 하고,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는 모든 입항 선박들을 40일 동안 격리 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런던과 베네치아 인구 절반이 사망했죠.

 

질병에 무지했던 사람들은 환자에게서 나는 악취로 인해 감염이 된다고 생각했는데요. 당시 흑사병을 치료했던 의사들은 악취를 피하기 위해 향신료와 약재를 넣은 이상한 모양의 마스크를 쓰기도 했습니다. 


출처: http://bit.ly/1JSEpAU

 

1350년 수그러들기 시작한 페스트

인류의 종말까지 예견했을 만큼 절망적인 상황이었던 1350년 말, 흑사병의 기세가 수그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약 550년간 주기적으로 흑사병이 발병하긴 했지만, 전과 같은 규모의 희생자가 발생하지는 않았죠.

 

현재 페스트균은 전 세계에 퍼져있지만, 항생제의 치료 효과가 뛰어나 발병 사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인류 최악의 재앙, '스페인 독감' 

1918년 발생한 '스페인 독감'은 인류 최악의 재앙 중 하나로 불립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8년부터 1920년까지 기간 동안 무려 최소 5천만 명에서 많게는 1억명의 감염자가 사망했다고 추정하는데요.

 

이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사망한 인구의 2배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다른 전염병이나 전쟁, 재해들과 비교했을 때도 단기간에 가장 많은 사망자를 발생시킨 사건이죠.

 

스페인 독감의 전염경로

스페인 독감이 정확히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실제로 독감이 처음 보고된 시기는 1918년 초여름으로, 당시 프랑스에 주둔하던 미군들 사이에서 환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처음에는 특별한 증상이 없었으나 같은 해 8월 사망자가 나오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 참전했던 미군들이 귀환하면서 미국에까지 확산되었습니다. 9월 중순 첫 환자가 발생한지 한 달 만에 2만 명이 넘는 미군을 포함, 총 50여만 명의 미국인이 사망했습니다.

 

또한 극지방과 태평양의 작은 섬에까지도 퍼져나가, 1919년 봄 영국에서만 15만명이 사망하는 등 약 2년 동안 전 세계에서 5000만 명 이상이 사망하게 됩니다.

 

한국의 '무오년 독감'

당시 일제의 식민 지배 아래에 있던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무오년 독감'으로 불렸으며, 약 7백여만 명이 감염되었고 14만 명이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이 수치는 조선 총독부가 집계한 공식 기록으로, 실제 손길이 닿지 않던 먼 지방의 사망자를 감안하면 희생자의 수는 훨씬 많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죽었는지, 추수할 사람들이 없을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일제의 횡포에 독감의 유행까지 더해져 인심은 점점 더 흉흉해졌고, 이런 민심이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났던 배경 중 하나였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출처: 위키피디아

 

왜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전 세계에서 유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하필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스페인은 중립을 지키고 있었으며,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적었습니다. 또한다른 유럽국가들과 달리 언론 보도 통제도 받지 않았는데요. 독감에 대해 상세하고 신빙성 있는 보도를 했던 관계로 많은 사람들이 스페인 언론을 통해 정보를 얻었던 것에서 이 명칭이 비롯되었습니다. 스페인 입장에서는 억울한 이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인플루엔자 A형 중 H1N1

당시에는 과학 기술로는 바이러스를 분리, 보존할 수 없어 정확한 원인을 밝힐 수 없었는데요. 2005년 미군 병리학 연구소의 '타우펜버그' 박사의 연구를 통해서 독감의 정체가 알려졌습니다.

 

알래스카에 묻혀 있던 한 여성의 폐 조직에서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를 분리해 재생해낸 결과, 이 바이러스는 인플루엔자 A형 중 H1N1형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2009년 확산되었던 신종플루와 같은 바이러스 형이죠. 



 인류가 박멸한 최초의 질병, '천연두' 

수만 년 전 아프리카 대륙에서 처음 발생되어, '에드워드 제너'의 종두법으로 예방을 할 수 있기 까지 5억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천연두! 천연두야 말로 인류에게 가장 심각하면서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 바이러스입니다.

 

로마에서도, 인도에서도, 중국에서도 때가 되면 폭풍처럼 몰아쳐 그야말로 인류의 역사를 뒤흔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천연두에 걸려 사망한 지도자나 역사적인 인물들, 인디언의 몰락만 대강 훑어봐도 그 사실을 익히 짐작할 수 있죠.

 

'호환 마마'?

천연두는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차례 창궐했었습니다. 아마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라는 표현, 한 번쯤은 들어 보셨을 텐데요. 여기서 말하는 '마마'가 바로 민간에서 흔하게 일컬어졌던 '천연두'의 속칭입니다.

 

원래 '마마'라는 호칭은 왕과 왕비 등 왕족에게만 붙이던 극존칭인데요. 천연두에 '마마'라는 이름을 붙였던 것을 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천연두를 두려워했었는지 짐작이 가시나요?

 

천연두의 높은 치사율

천연두는 '바리올라'라고 하는 바이러스에 의해 생기는 전염병입니다. 예방 백신을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서는 치사율이 30%에 달하는데요. 이렇게 무서운 생사의 갈림길에서 다행히 목숨을 건지더라도 얼굴에는 평생 지울 수 없는 마마 자국이 남게 됩니다.

 

하지만 천연두의 치사율은 지역과 시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천연두의 유행과 관련해 가장 유명한 사례는 역시 아메리칸 인디언일 텐데요. 보통 천연두의 치사율은 30% 정도지만, 신대륙의 원주민들은 천연두에 대한 면역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80%가 넘는 치사율을 보였습니다.

 

천연두의 증상

천연두에 감염되면 2주 정도의 잠복기를 거쳐 전신에 발진이 나타납니다. 얼굴부터 발끝까지, 주로 눈에 보이는 부분에 빨간색 반점이 생기고, 후에 수포나 농이 생기기도 하죠. 그러다가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약하게는 사흘, 보통 보름 정도를 앓았다고 하는데요. 특히 면역력이 약한 어린 아이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죠. 


<지석영 동상> 출처: 위키백과

 

'에드워드 제너'의 천연두 백신 개발

다행히도, 1773년 '에드워드 제너'가 '우두접종법'으로 사람에게 전염되지 않는 예방 백신을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우두'는 소에 생기는 마마고, '천연두'는 사람에게 생기는 마마인데요. 우두접종이란 소에게 생긴 마마 균을 사람에게 접종하여, 사람에게 생길지도 모르는 천연두를 예방하는 방법입니다. 즉, 소에 생긴 마마균을 사람에게 주사하여, 천연두에 대한 항체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우리나라에서는 지석영, 이재하 선생님에 의해 1898년 10월, 서울에 의료기관인 '종두소'를 설치한 것을 시작으로 접종을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인류가 박멸한 최초의 질병?

천연두 바이러스는 사람 외에 다른 동물에게는 전염되지 않아, 예방 접종만 확실하게 하면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현재는 세계 모든 국가에서 예방 접종을 실시한 결과, 1980년 5월 8일부로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천연두 박멸을 공식으로 선언했죠. 지금으로선 천연두만이 유일하게 멸종된 감염 질환으로 기록이 되고 있는데요.

 

우리나라의 경우 1979년부터 강제 접종을 중단해, 현재는 접종을 권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페스트, 스페인 독감, 천연두와 같이 그간 인류가 싸워온 바이러스에 대해 살펴보았는데요.

 

메르스도 하루 빨리 백신이 개발되고, 범국가적인 노력으로 확산을 막아 더 이상 희생되는 사람이 없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