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밤길, 모든 것이 잠에 빠져 고요한 산골짜기에 한 명의 시동을 벗삼아 유유자적 달빛이 안내하는 길을 걷는 한 선비가 있습니다. 많이 지친 듯 발걸음이 더뎌진 어린아이는 한 번쯤 쉬어갔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간절히 바라던 무언가에 가까워졌다는 생각에 가득 차 신이 난 주인은 벌써 저만치 앞서가고 있습니다.
위의 그림은 조선 후기의 화가 심사정의 파교심매도 입니다. 탐매도로 불리기도 하는 파교심매도는 중국 당나라 때의 선비, 맹호연의 고사로부터 비롯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많은 화가들에 의해 다양한 그림으로 표현되었습니다. 특히 유학이 통치이념이자 사회의 근본원칙으로 자리잡았던 조선시대에 많은 그림이 탄생하게 되었죠.
오늘날에도 이 주제를 묘사한 작품을 상당수 찾아 볼 수 있을 정도로 특정 시기나 인물에 관계없이 조선의 문인들 사이에서 즐겨 표현되었습니다.
맹호연은 잠시 벼슬에 몸담기도 하였으나 이른 시기 낙향하여 세속의 영욕을 버리고 자연을 벗삼아 천하절경을 주유했다는 맹호연은 자주 매화를 찾아 길을 떠났다고 합니다.
아직 눈이 채 녹지도 않은 이른 봄, 붓과 간단한 요기거리를 들어줄 어린 시종 하나를 대동하고 수도 장안의 동쪽에 위치한 파교를 건너며 추운 날씨에도 어딘가에서 그 고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을 매화를 찾아 헤맸던 것입니다.
맹호연이 사랑해 마지 않았던 매화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흔히 군자의 꿋꿋한 절개, 꺾이지 않는 아름다운 정신을 상징하는 사군자 중 하나입니다.
특히 추운 겨울, 매서운 바람과 차가운 기온 속에서도 피어나 그 고고한 아름다움을 뽐냈던 꽃으로서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오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牆角數枝梅(장각수지매)
凌寒獨自開(능한독자개)
遙知不是雪(요지부시설)
爲有暗香來(위유암향래)
담 모퉁이의 매화 몇 가지
추위를 이기고 홀로 피었네.
멀리서도 눈이 아님을 알겠나니
은은한 향기가 풍겨오누나.
중국 송나라 때의 이름난 정치인이자 문인이었던 왕안석의 매화(梅花)입니다. 이 시에서 표현된 것처럼 매화는 끊임없는 자기수양과 공부를 통해 진정한 유교적 정신세계의 실현을 추구했던 선비들이 애호했던 꽃으로,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시나 서화를 가리지 않고 흔히 표현되었습니다.
파교심매도는 길을 떠난 선비와 한 명의 시동이 그려지는 형식이 대부분입니다. 주인은 말을 타고 있고 시동은 주인의 뒤에 떨어져 걸어오는 모습으로 주로 묘사되는 이 주제는 시대나 작가에 관계없이 대부분 비슷한 형식이나 구도로 표현되었지만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의 화법이나 그리는 사람의 개성, 표현법 등에 있어서 다소 차이를 보였습니다.
현존하는 파교심매도 중 어떤 작품은 화가가 유명한 중국의 화보집을 참고하여 그린 덕분에 그와 비슷한 형식과 표현법으로 완성되었는가 하면, 또 다른 그림에는 작자만의 개성이 듬뿍 담겨지기도 하였습니다.
위의 그림은 조선 중기의 화가 김명국의 파교심매도인데요, 멀리 보이는 날카로운 선으로 묘사된 원경의 설산, 근경에 보이는 성마른 매화나무의 모습을 보아 작품의 계절이 겨울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작품 속 매서운 바람에 고개조차 들지 못하는 하인과는 달리 말도 타지 않은 맹호연은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이상향, 즉 매화를찾은 듯 의연히 정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치 눈 앞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목격하는 듯한 생생함을 부여하는 특유의 활달한 필치와 예리한 표현방식은 과감하고 호방한화풍으로 널리 알려진 작자 본인의 개성뿐만 아니라 주제 본연의 정신까지 함께 나타내고 있습니다.
파교심매도, 탐매도 속의 겨울과 같이 현재 우리나라 경제와 증권업계는 한겨울 매서운 추위와 같은 세계 경제의 위기 속에서 어렵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때 일수록 진정한 선비정신의 구현을 갈망하며 꿋꿋한 의지로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해나가고 했던 옛 선비들의 담대함을 본받아 우리의 마음 속에도 매화 한 송이와 같은 의지와 자신감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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