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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필진 칼럼/공연/문화/육아

여름과 가을의 경계에서 - 강병구의 증권맨이 가꾸는 주말농장

여름과 가을의 경계에서 - 강병구의 증권맨이 가꾸는 주말농장



임시 휴일, 지리산 계곡으로 캠핑을 갔다.

어머니께 내일 뭐하냐고 전화가 온다.

토요일이자 광복절이니, 당연히 논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벼논에 약치러 오라 하시는 어머니.

지리산에서의 1박은 당일 치기로 당겨진다.




학교 다닐 때부터 있었던 마당에서 나를 반기는 장미도,

좋아하는 시에 등장하는, 나이 들면서 좋아진 백일홍도, 오늘은 별로 반갑지가 않다.

계절이 잠시 헷갈린다. 장미도 있고, 백일홍도 있는 계절에 약을 쳤었나?

사실 벼농사는 주요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에 오늘 왜, 무슨 농약을 쳐야하는지도 모르고 왔다.

어쨌든 농약 한번만 치고 나면 수확이라니 다행이다.



논에 들어 서는 순간 기분이 좀 새로워진다.

벼꽃이 이렇게 생겼구나.

 

세상에 무수히 많은 꽃이 있겠지만,

밥 먹고 사는 우리가 제일 고맙게 생각해야 할 꽃은

바로 얘가 아닐까?

 

벼도 꽃이 피는 줄은 알았지만, 언제 피는지는 몰랐는데

오늘 처음으로 자세히 본다.

 

덥다고 바다로, 계곡으로 떠나는 사람들을 대신해,

벼꽃이 뜨거운 태양에너지를 온몸으로 받으며 꽃을 피우고 열매도 키우고 있다.

사람을 위해….

 

요새 읽고 있는 책에

노동, 토지, 화폐, 시장, 분업이라는 단어들이 많이 나오는데

농사야말로 분업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 아닐까?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하긴 나도 벼농사보단 다른 잡다한 식물에 더 관심이 많긴 하다.

 

아침 7시쯤 시작해 낮 11시쯤 끝났다.

이제는 올 해 시험 재배하는 아이들이 잘 자라는지 둘러 볼 차례.



황칠나무.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었다.

일단 산에 잘 자랄 수 있는지 시험 삼아 몇 그루 심었다.

여름이 지나가는 지금까지는 성공적이다. 겨울만 잘 지나면 합격.



엄나무.

밭둑에 난 엄나무 순을 뜯어 먹은 게 맛있어 몇 그루 더 심었는데.

잎이 노란 게 영 못 자라지만, 어찌할 바를 몰라 거름을 못하고 있다.

일 년간 잘 살면 내년 봄에는 밑 거름을 좀 줘야겠다.



올해 처음 심어보는 토종 보리수.

따가운 햇살 먹고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삽목 해서 옮겨 심은 왕 보리수.

1~2주 못 본 사이 1미터 이상 자랐다.

옆에 심은 토종 보리수랑 경쟁하는 듯..



밤의 빗장문을 연다는 야관문.

어디서 씨가 날아왔는지 한쪽에 자리 잡았다.



따가운 햇살이 싫다가도, 이렇게 무럭무럭 자라는 식물들을 보노라면 고마워진다.

벌써 수확철이 다가오고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