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은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을까요?
남아있는 문화유산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선잠단이에요.
선잠단의 위치는 1425년에 발간된 <경도한성부>에서 처음 나타났는데요.
"선잠단은 동수문 밖 사한이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사한이는 성북동을 의미해요.
예로부터 나라에서는 누에치고 길쌈하기를 권장하고,
누에신에게 제사지내는 단을 만들어 왕비가 해마다 친히 제사를 지냈어요.
중국 상고시대 황후인 서릉씨를 누에신으로 모시고,
주변에 뽕나무를 심고, 궁중에서 키우는 누에를 먹였지요.
아 선잠단은 5월 행사가 있을 때 볼 수 있지만, 평상시에는 관람이 불가능하답니다.
저는 성북동 시립미술관에서 주최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선잠단지를 들어가 볼 수 있었는데요.
제사를 지는 날에 다시 와서 그 의식을 보아야 조금 실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터 자체로는 특별하게 의미를 알지 않는 이상 공터라는 느낌이거든요.
선잠단지 [사진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1920년대까지만 해도 초가와 양옥이 드문드문 있는 한가한 동네였던 성북동은
1930년대를 지나며 한옥, 양옥 할 것 없이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어요.
1936년 일본의 경성시 구획정리 과정에서 성북동 1가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근대적 개념의 택지조성사업이 실시되었어요.
사대문 안으로만 국한되었던 시내구역이 혜화문 밖으로 넓혀진 거에요.
혜화문을 통해 오가는 유동인구가 늘어났고,
주변으로 집장사들의 성냥갑 같은 기와집이 빽빽하게 지어졌어요.
화물을 나르는 트럭의 이동이 잦아졌고 이곳저곳은 공사장으로 바뀌었어요.
거리의 변화만큼 세계의 정세도 빠르게 변화했는데요.
일제 강점기에 일어난 태평양 전쟁은 전쟁터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영향을 미쳤어요.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많은 조선 사람들이 징용되었어요.
나는 주물공장의 화부로서 현지 징용이 되었다. 내 평생은 매연에 가득 찬 이 주물 공장에 발목이 묶여진 셈이었다. 전쟁이 계속되자 물자 부족으로 생활은 궁핍 상태로 빠져들었다. 물자 부족인데도 성북구는 발전되고 개발되었다. 성냥곽 같은 집장사 기와 집이 수없이 늘어났다. 그 이유인즉 시골 부자들이 농토를 팔아갖고 도시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 정한숙, <성북구 성북동>
성북동 하면 서울성곽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이 성곽의 공식명칭은 서울 한양도성이에요. 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궁궐과 종묘를 짓고,
태조 5년(1396)부터 성곽을 두르기 시작했어요. 전국 각지에서 인력을 동원하여 성곽을 세웠는데,
부실공사를 막으려고 성벽을 쌓은 돌에 공사를 맡은 담당 고을과 담당자의 이름을 새겼답니다.
숙정문과 혜화문 구역 성곽 돌에는 '강릉'이 새겨져 있어 강원도 관할 구역인 것을 알 수 있어요.
숙종 때까지 몇 대에 걸쳐 구간 확장과 보수를 한 성곽은
일제강점기에 많은 구간이 훼손되었어요.
1915년부터 일제는 경성시 구역 개수계획을 세우고
서문과 성벽을 없애고 길을 내거나 건물을 세웠어요. 안타까운 일이지요.
해방 후 서울 경계가 확장되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성곽 바로 밑까지 집이 들어섰어요.
성북동 풍치 보호림 지대까지 학교를 세우며 성곽을 허물기도 했고,
집과 학교를 지을 때 성벽의 돌을 쓰기도 하였어요.
1963년에는 사적 제10호로 지정되었으나 보존이 제대로 되지 않았어요.
서울의 북쪽 문인 숙정문은 1968년 무장공비가 침투하는 사건으로
그동안 일반인들이 들어가지 못하였어요. 2006년 숙정문을 다시 개방하면서
북악산을 따라 성북동으로 들어오는 성곽길이 열린 것이 숙정문을 대신해
북방으로 통하는 관문이었던 혜화문은 1929년 전차가 다니며 헐렸다가
1994년 현재 자리에 복원되었어요.
다음은 민족정신의 수호자 만해 한용운 시인의 집이에요.
이곳은 심우장이라고 불리는데요. 1933년부터 살던 집이에요.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 시인인 만해는 민족정신을 통해 당대 사상계를 밝힌 등불이었어요.
불교의 현실 참여를 주장하고, 3.1운동 민족대표의 33인의 한 명으로,
활발한 사회활동과 집필로 독립운동을 펼쳤어요.
일제강점기 총독부가 있는 남쪽이 보기 싫어 북향으로 집을 세우고,
일제에 돌아선 변절한 지식인들은 문 안에 들이지 않았어요.
'심우장'은 불교의 선 수행에서 처음 마음을 일으키는 단계에서 나온 말로,
'무상대도를 깨우치려 공부하는 집'이라는 뜻이에요.
정면 4칸, 측면 2칸에 팔작기와지붕을 올린 한옥은 벽산 김적음 스님과 몇몇 지인들이
거처할 곳 없는 만해를 위해 마련해 준 것이에요.
지금은 전하지 않지만, 만해가 거처할 때 석정 안종원의 글씨와 일주 김진우의 그림,
위창 오세창이 쓴 심우장 편액이 걸려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 방위에 걸려 있는 '심우장' 편액은 위창이 쓴 것으로 잘못 알려졌으나
성북동에 살았던 서예가 유치웅(1901~1998)이 쓴 것이에요.
만해는 해방을 보지 못한 채 1944년 심우장에서 숨을 거두었어요.
심우장은 1985년 서울 특별시기념물 제7호로 지정되어,
만해를 기리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성북동 명소가 되었어요.
만해는 떠났지만, 그가 마당에 직접 심은 향나무가
주인을 닮은 기개와 푸름으로 심우장을 지키고 있답니다.
간송미술관 [사진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이 미술관을 가기 위해 늘 새벽같이 나와서 두어 시간 줄을 서는 고충을 느꼈는데요.
미술관 안에 들어서는 순간 열 시간이라도 기다릴 수 있는 가치를 느끼실 수 있어요.
간송 전형필은 일제 강점기 훼손되고 빼앗기는 문화유산을 보호한 문화재수집가예요.
일본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대항하고, 우리 문화재의 가치를 알리려 노력했어요.
안목이 뛰어난 간송은 헐값으로 나온 문화재라도 가치를 따져
주인에게 제대로 된 값을 쳐 주었고, 일본에 팔려나가는 문화재는
경매가의 몇 배가 넘는 돈을 내서라도 사들였어요.
전적, 서화, 석조 등 전 분야를 아우르는 수집품을 온전히 보존하고자
성북동 북단장에 1938년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관인 부화각을 건립하였죠.
한국전쟁 때 소장품이 북한군에게 빼앗길 위기에 처했지만
손재형과 최순우가 지연작전을 펼쳐 지켜냈어요.
주요 소장품에는 <훈민정음>, <혜원풍속도>,<백자박산향로> 등이 있어요.
수집한 문화재를 많은 사람들이 보고, 여러 학자들이 연구할 수 있게 하라는
간송의 뜻을 이어 1966년 한국민족미술연구소가 개설되었어요.
보호각은 간송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1971년부터 지금까지 봄과 가을에 전시를 열어
소중한 문화유산을 공개하고 있답니다.
성북천을 소개하고 싶은데, 성북천은 가본 적이 없어요.
조만간 날이 좀 풀리면 천에서 거닐며 사진도 찍고, 이야기를 풀어볼게요.
제가 소개한 성북동 동네산책 어떠셨어요? 옛 기록들과 많이 달라진 풍경이지만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서로 안부를 묻는 인심을 기억하는 이웃들이 남아있어요.
어느 동네든지 사람이 있는 자리에는 기록보다는 기억이 좀 더 지배적이겠지요?
오늘도 그 순간을 기억으로 머무를 수 있게 좀 더 많이 만나고 많이 보아야겠어요.
어떠한 곳이든 장소에는 사람을 통한 기억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날이 조금 풀리면 동네를 조금 관심 있게 기울여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지난 세월이 있는 예전 동네도 좋고, 현재가 있는 지금의 동네도 좋고요.
기억을 만들기엔 지금뿐이 없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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