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블랙먼데이’라는 단어 들어보신 적 있나요? 어감 자체에서 풍겨오는 인상이 그리 좋지는 않으시죠? 오늘 함께 알아볼 경제학 역사교실의 주제는 1987년 미국 증시가 충격적인 주가 폭락을 기록했던 암흑의 날 ‘블랙먼데이’입니다.
# 월요일 개장과 동시에 찾아온 블랙먼데이
1987년 10월 19일. 주말 이후 뉴욕 증권거래소가 개장하자마자 순식간에 매도 주문이 눈사태처럼 밀려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매수자가 상대적으로 없는 편이어서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죠.
평소 같으면 개장 후 5분도 안 되어서 거래가 성사되던 다우존스지수(미국의 다우존스사가 뉴욕증권시장에 상장된 우량기업 주식 30개 종목을 표본으로 하여 시장가격을 평균하여 산출하는 세계적인 주가지수)에 속한 유명 종목들 중 1/3이 단 한 건의 거래도 성사되지 못하는 등 증시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개장한 지 1시간도 되지 않아 다우존스지수가 104 포인트나 하락했습니다. 거래소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고, 매도 주문이 끊이지 않고 밀려들어 대형 전광판에 불이 붙은 듯 온통 붉은 색으로 번쩍였습니다.
상승을 나타내는 녹색 화살표는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밀려드는 매도 주문과 달리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아 주가는 계속해서 하락했습니다. 거래량은 계속 사상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죠.
뉴욕 증시의 급락세는 순식간에 시카고 상업거래소까지 확산되어 주가지수선물(금융 분야의 파생상품의 하나로, 장래의 주가지수를 대상으로 한다) 종목의 가격이 폭락했습니다.
대량 매도 주문이 동시에 밀려들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속수무책이었고, 주가지수선물이 급락했다는 소식은 부메랑처럼 증시로 돌아와 또 하나의 악재가 되었죠. 주식시장과 선물시장이 서로 마이너스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주가지수와 선물지수의 하락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거래량도 급증했습니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기관들이 뉴욕과 시카고에서 대량 매도에 나서면서 재앙이 절정으로 치달았죠.
숨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주가지수는 거듭 하락했고, 주가 하락세는 장이 마감된 후에야 비로소 멈췄습니다.
# 단 하루 동안의 피해 규모
블랙먼데이 당일 다우존스지수는 2,246.74포인트에서 1,738.74포인트로 무려 508포인트나 하락해 하락폭이 22.6퍼센트에 달했습니다. 평소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하루 거래되는 주식이 약 1억 주였는데, 이날은 평소 거래량의 6배가 넘는 6억 800만 주가 거래되었습니다.
단 하루 사이에 주식시장에서 5,000억 달러가 증발한 것이죠. 이 금액은 미국 국민총생산(GNP)의 1/8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더욱 경악할 만한 사실은 전산시스템 마비로 처리되지 못한 매도 주문이 워낙 많아서 많은 투자자들, 특히 개미 투자자들이 자신의 매도 주문이 성사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2~3일 후에나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전산시스템 오류로 인해 매스컴들도 폐장한 지 5시간 반이 지난 후에야 주가 급락 소식을 보도할 수 있었습니다.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1,600개 종목 가운데 52개의 종목만 주가가 상승했을 뿐 나머지는 전부 하락했습니다. 1,192개 주식이 연간 최저점을 갈아치웠고 대표적인 우량주들도 급락세를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GE(제너럴 일렉트릭)가 33.1퍼센트, AT&T 29.5퍼센트, 코카콜라 36.5퍼센트 등 거의 모든 대기업의 주가가 평균 30퍼센트씩 하락했습니다.
시카고 선물거래소의 주가지수선물 하락폭도 주가 하락폭에 못지 않았습니다. S&P 주가지수가 28.6퍼센트 급락한 201.5포인트를 기록했고 증거금을 회수하지 못한 소형 증권사들이 줄줄이 파산을 선포했습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죠. 주가 급락의 여파로 채권시장에서도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엄청난 재앙이 단 하루 만에 벌어졌습니다. 뉴욕 타임즈에서는 이 날을 ‘월가 사상 최악의 날’로 보도했습니다. 이 날이 바로 미국 금융사에서 가장 어두웠던 날인 ‘블랙먼데이’입니다.
증시가 투자자들이 미처 대응할 수도 없을 정도로 갑자기 급락하기는 했지만, 이 세상 그 어떤 재앙도 아무 이유 없이 출현하지 않습니다. 블랙먼데이 역시 갑작스레 발생한 재앙은 아니었습니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 미국경제는 황금기를 누렸습니다. 경제가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하고 인플레이션율과 실업률 모두 매우 낮은 수준으로 유지됐습니다. 하지만 1973년부터 1975년까지 달러를 중심으로 한 브래턴우즈 체제가 와해되자 미국에게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인플레이션율이 상승하고 실업률이 고공비행을 했으며 달러화 가치가 한 해 평균 12퍼센트씩 하락했습니다.
1980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했고, 그는 취임 직후부터 경기 회복에 역점을 두고 ‘감세, 재정지출 삭감, 기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 완화, 화폐 공급량 제한’이라는 네 가지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이 계획의 핵심은 경제에 대한 정부의 통제와 간섭을 완화한다는 것이었죠.
이 경기부양책의 최대 수혜자는 미국 시장이었습니다. 거액의 국제자금이 미국 증시로 유입되어 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했고, 1987년 8월까지 증시의 대호황이 계속되었습니다. 주가가 상승하자 거래량도 빠르게 증가했죠.
하지만 증시의 과도한 활황은 적지 않은 불협화음을 남겼습니다. 레이건 정부의 대규모 군비 확장으로 인해 적자재정 상태가 놀라운 속도로 심화되었죠. 1985년 미국은 71년 만에 다시 순채무국으로 전환되었을 뿐 아니라, 채무가 1075억 달러에 달해 세계 최대 채무국이 되었습니다.
그 후로 외채가 해마다 증가했고 이 모든 것이 상승을 거듭하고 있는 주식시장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미국의 무역적자는 계속해서 늘고 있음을 알려주는 지표가 발표되고 걸프만에서 미국 군함 한 척이 이란에게 격침되었다는 헛소문이 떠도는 등 주식시장이 술렁였습니다. 결국 월 가를 감돌던 불안감이 엄청난 폭풍우를 몰고 왔죠.
미국 증시의 충격적인 대폭락은 도쿄와 런던 등으로 빠르게 확산되어 전 세계 증시에 도미노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런던, 프랑크푸르트, 도쿄, 시드니, 홍콩, 싱가포르 등의 증시가 큰 타격을 입어 주가가 10퍼센트 이상 급락했죠.
그래도 다행인 것은 1929년 대공황에 버금가는 비극은 재연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더 큰 재앙을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이사회에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린스펀 의장의 눈부신 활약이 큰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그린스펀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미국 중앙은행으로서 미국경제와 금융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할 준비가 되어 있다.”라는 내용의 짤막한 성명서를 발표했고, 우선 대량의 국채를 매입해 시장에 120억 달러의 유동성을 공급하는 한편, 연방기금금리를 0.75%포인트 인하해 투자자들의 불안을 해소시켰습니다
정부에서도 블랙먼데이의 충격에 동요되지 않고 미국 경제는 매우 안정적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고, 대형 시중은행들이 잇따라 금리를 인하하면서 월 가에는 다시 활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블랙먼데이’ 이후 미국 경제는 기나긴 침체의 터널로 빠져들었습니다.
미국은 많은 인구가 직접적으로 주식 투자 업무에 종사하고 주식 배당금이나 투자 수익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구매력이 높고 소비성향이 강하지만, 주가가 폭락할 경우에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는 특징이 있죠.
블랙먼데이로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된 사람들이 많았고, 소비 위축으로 이어졌습니다. 사건 이후 1년 사이에 미국인들의 소비지출액이 약 500억 달러나 감소했고, 소비에 의존해 성장하던 미국 경제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주가 폭락을 경험한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미국 경제에 대한 불신감이 커졌습니다. 블랙먼데이 이후 미국 증시에 대한 신뢰가 크게 떨어져 미국인들조차 섣불리 주식에 투자하지 않았죠. 기업에 대한 투자가 감소하다 보니 기업마다 대규모 감원에 들어가 실업률이 급증하는 현상도 나타났습니다.
부동산 가격에도 영향을 미쳐 미국인들의 생활수준이 전체적으로 하락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대신 금융 경제 > 금융경제 상식/용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테크 첫걸음, 통장 쪼개기! (0) | 2012.05.17 |
---|---|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이 뭔가요? (0) | 2012.05.15 |
그레샴의 법칙이 무엇인가요? (0) | 2012.04.16 |
경제학 역사 교실 ④ : 1차, 2차 오일쇼크 (0) | 2012.04.12 |
치킨 게임을 알아보자 (0) | 2012.0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