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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스토리/대신뉴스

강을 보듬은 듯 위로하는 도시 나주 羅州 - 영산강 물길 따라 나주 한바퀴

강을 보듬은 듯 위로하는 도시 나주 州 - 영산강 물길 따라 나주 한바퀴




나주는 오래된 고장이다. 지금은 ‘광주 아래’ 즈음으로 불리지만 전에는 굉장히 큰 도시였다. 고려를 창건한 왕건이 머물기도 한 도시이면서 조선시대까지 전라도의 지방행정중심지였기 때문에 ‘천년 목사 고을’이라 고 불리기도 했다. 전라도라는 도 이름이 전주와 나주에서 나온 것이니 가히 전라도에 서 으뜸이라 할 만한 도시였던 것이다.

글 이성수 | 사진 권윤성



곡창지대라서 겪은 아픔, 그리고 위로

영산강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품고 흐른다. 구성진 남도 가락처럼 굽이굽이 호남평야를 드나들면서 영산강 350리를, 삶의 희로애락을 싣고 쉼 없이 흐른다. 오랜 전통답게 나주는 나주 나름의 강건한 기풍을 간직하고 있다.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 광주 학생독립운동 진원지인 구 나주역사다. 


2000년 12월 29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83호로 지정된 나주역사는 1913년 7월 1일 호남선 개통에 따라 신축된 건물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그리 볼 것도 없는 건물. 하지만 나주역사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손가락이 아닌 달을 바라봐야 한다. 1929년 10월 30일 일본인 남학생과 조선인 남학생의 편싸움이 발단이 돼 일어난 광주학생운동이 나주역사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광주중학 3학년인 후쿠다 슈조가 광주여고보 3학년인 박기옥의 댕기머리를 당기면서 희롱하자, 박기옥의 사촌동생 박준채가 싸움에 나섰는데 이 싸움이 광주고보와 광주중학 학생들의 패싸움으로 확산되었고, 일본 경찰은 일방적으로 일본인 학생을 편들고 조선인 학생들을 구타하였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11월부터 광주 지역에서 학생들이 가두시위에 나서고 이듬해 1월에는 서울을 비롯해 멀리 북간도까지 시위가 퍼지면서 독립운동으로 확산됐다.



나주는 곡창지대이다. 일제가 공업화를 하면서 조선에서는 쌀을 싸게 사갔는데, 그 쌀이 모인 곳이 전라도 지역에서는 나주 혹은 목포였다. 나주가 일본의 내륙 침탈 전진 기지였기에 일본인도 많이 살았다. 영산포 홍어의 거리 선창에서 정미소까지 750m에 일본식 가옥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서 영산포 선창 일대가 ‘근대 역사의 거리’로 불릴 정도이다. 거리는 홍어 냄새와 기름 냄새가 가득하다. 지금 보면 아주 오래된 거리겠지만 원래 오래된 것에는 추억이 가득한 법이다. 


강변에 앉은 카페 ‘영산나루’는 현직 의사와 전직 교사 부부가 운영하는 영산포의 명소로,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히 감성 넘치는 곳이다. 영국식 찻잔에 담아 한 모금 마시는 홍차 맛에 이국적인 향이 깊숙이 퍼진다. 수 백 년 된 팽나무가 자리 잡은 정원을 가로지르면 붉은색 벽돌로 지은 별채가 비자나무에 둘러싸여 있다. 


‘나주 영산포 농지를 수탈하기 위해 1909년 일제가 설립한 동양척식주식회사 영산포지점의 문서를 보관했던 곳’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쓰라린 추억일랑, 오래된 지난날에서 우리네 살아온 삶을 발견하면서 한 줌의 위로를 얻는 것은 기쁜 일이기도 하다.


대신증권 나주지점이 있는 중앙동에서 영산로를 따라 4.33km쯤 오르면 故 양재봉 대신증권 창업자의 생가를 찾을 수 있다. 故 양재봉 창업자의 뜻에 따라 2001년 복원한 이곳은 1925년 당시, 송촌동 373번지를 그대로 재현한다. 견고한 기와가 인상적인 생가는 故 양재봉 창업자의 생전 유품을 전시한 기념관과 나주시민들을 위한 도서관으로 운영된다. 선인의 얼은 그대로 남았지만 생가 특유의 무거움은 느껴지지 않는다. 봄철과 가을철이 되면 대문을 열어 나주 지역 아이들의 양지바른 놀이터가 된다. 생가와 제실을 잇는 7000여 평 과수원에는 배꽃 피는 봄부터 배 따는 가을까지, 은은한 단내음을 퍼뜨린다.




1. 나주에서 가장 오래된 일본식 가옥



2. 일제강점기에 세운 동양척식주식회사 문서고


3. 故양재봉 명예회장 생가 ‘대신송촌문화재단’


4. 故양재봉 명예회장 생가의 현판 ‘대신송촌기념관’


참 뭐라 말할 수 없는 맛

화려했던 날의 물증은 등대로 남아 있다. 밤낮으로 드나드는 배가 하도 많아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내륙에 등대를 만들 정도이다. 영산강의 수위 관측과 뱃길 안내용으로 지어진 ‘영산포 등대’는 1915년 철재 콘트리트로 건축돼 제129호 등록문화재로 등재되어 있다. 지금이야 제 기능도 못하고 문화재로 있지만 건축 당시 이 지역에서 볼 수 없었던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로서도 가치가 컸다.


영산포의 영화를 되뇌어주는 것은 홍어이다. 홍어 맛이야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 것이다. 다만 삭힌 홍어를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데, 그 단맛에 중독되고 만다. 냄새는 고약하지만 맛은 달다는, ‘상한’ 것은 먹지 못해도, ‘삭힌’ 것은 먹을 수 있다는, 같지만 다르다는 모순과 대립이 논리의 한계를 넘어 조화를 이루는 삶의 지혜를 홍어에서 본다.



홍어도 별미지만 나주에서 먹는 곰탕은 참 특별하게 맛있다. 곰탕 한번 맛보고는 내 생전에 이런 맛있는 탕을 처음 먹어본다는 사람도 있다. 곰탕은 뼈를 우려낸 국물이 아니라 살코기를 우려낸 국물로 만든다. 그래서 맛이 청결하다. 설렁탕이 기름지고 탁한 맛이라면 곰탕은 산뜻하고 맑은 맛이다. 무국을 만들 때 고기를 같이 넣어서 끓이면 맑은 국물이 나오듯이 곰탕은 색깔도 맑다. 


설렁탕, 해장국이 그렇듯이 곰탕 역시 장터 음식이다. 나주장은 꽤 컸는데, 장꾼들이 출출하면 밥 한 그릇 말아달라며 슬그머니 자리에 앉아서 퍼먹는, 오랜만에 장에 온 할배와 손주를 데리고 들어가 막걸리 한잔 하며 손주 밥 퍼 먹는 모습을 바라보는 풍경에서 시작된 음식이 나주 곰탕이다.



사골과 고기를 함께 삶아 육수가 맑은 나주곰탕. 담백한 국물맛이 일품이다.



과거와 현재가 나란한 멋

나주 도래마을은 다도면 풍산리에 있는 한옥마을로 풍산 홍씨 씨족마을이다. 마을을 산봉우리 세 개가 감싸고 있는 평안한 마을이다. 재미있는 것은 마을 앞의 들 이름. 지역 사람들은 들에도 독뱅이들, 가리시암 같이 특이한 이름 붙여놓고 지금도 독뱅이들에 김매러 가고, 가리시암에 물 대러 간다. 마을이 형성된 것은 1480년경부터로 500년이 넘었다.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이 선정한 시민문화유산 ‘도래마을 옛집’


현재 마을에는 조선시대 사대부 가옥이 많이 남아 있으며 가구 수가 100호가 넘는다. 마을의 대표적인 문화재는 나주 홍기응가옥(중요민속문화재 제151호)이다. 특히 도래마을에는 ‘도래마을 옛집’으로 불리는 한옥이 있는데 이곳 별당에서는 각종 전시도 열린다. 서울 성북동에 있는 최순우 옛집에 이어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이 선정한 시민문화유산 제2호이기도 하다.



나주가 오래된 도시라고 낡고 고루한 것만 남아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나주에는 혁신도시라는 이름으로, 여러 기업체가 들어올 예정이고 기존 기업도 사세를 더욱 넓히고 있다. 그중에 눈에 띄는 것이 남양유업이다. 남양유업은 공장 안에 사내 카페를 만들었는데, 이를 일반에게도 공개하고 있어 지역 약속장소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남양유업이 마련한 ‘더 카페’는 1층 140평, 2층 72평으로 총 규모 212평에 이르는 규모를 자랑한다. 미술관을 방불케 하는 규모이다. 2층 벽면에는 1만3000여 권의 책이 즐비하다. 커피 값도 싸서 한 잔에 1000원~1500원이면 맛있는 커피를 즐길 수 있다. 광주에 사는 사람들도 ‘더 카페’를 찾기 위해 일부러 나주에 건너 올 정도이다. 달달한 커피 향에 젖고, 시원한 책의 향연에 젖을 필요가 있을 때 한번 찾아가보기를 권한다.



누군가는 나주를 생각하며 나해철의 시 ‘영산포’를 떠올릴 것이다. 


배가 들어

멸치젓 향내에

읍내의 바람이 달디달 때

누님은 영산포를 떠나며

울었다


가난은 강물 곁에 누워

늘 같이 흐르고

개나리꽃처럼 여윈 누님과 나는

청무를 먹으며

강둑에 잡풀로 넘어지곤 했지


빈손의 설움 속에

어머니는 묻히시고

열여섯 나이로

토종개처럼 열심이던 누님은

호남선을 오르며 울었다.


늘 같이 흘러가는 가난에 영산포를 떠나야 했던 누님들이 많기도 많았던 시절을 회상케 한다. 나주는 과거에 청무를 먹으며 빈손의 설움을 달래는 도시였지만, 영산강은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한 사랑을 기억하게 한다.



대신증권 나주지점장이 추천한 나주 맛집

곰탕거리 1인자, 하얀집



곰탕만으로 승부하는 나주 대표 곰탕집 <하얀집>은 5일장이 열리던 60여 년 전부터 소 내장과 고기를 끓여 국밥을 만들어냈다. 이후 머릿고기와 양지, 사태 등을 끓여내면서 나주곰탕의 탄생을 알린 곳이기도 하다. 고기를 식히는 과정을 통해 기름기를 빼 담백한 맛을 내는 것은 다른 나주 곰탕집들과 다른 점이다. 고기 맛을 보고 싶다면 일반 곰탕보다 수육곰탕을 권한다.

문의: 전남 나주시 중앙동 48-17 / 061-333-4292


톡, 쏘는 맛 홍어 1번지



영산포 홍어거리에 위치한 ‘홍어1번지’는 국내 최초의 홍어요리 명장이 운영하는 음식점이다. 삭힌 홍어살을 제육과 묵은 김치에다 막걸리까지 한잔 곁들여서 홍탁 삼합으로 먹으면 그 맛이 절묘하다. 홍어무침, 홍어전, 홍어튀김, 보리애국으로 이뤄진 홍어 코스요리도 이 집의 대표 메뉴다.

문의: 전남 나주시 영산동 254-1 / 061-332-7444


카페와 펜션, 영산나루



전남 나주 영산강 유역에 있는 카페 ‘영산나루’는 일제강점기 동양척식회사 영산포출장소를 리모델링한 공간이다. 올 초 출장소의 숙직실을 카페로 개조해 문을 열었고, 내년 초엔 문서고 공간도 갤러리로 새 단장해

오픈할 예정이다. 커피를 비롯해 각국의 홍차를 판매한다. 친환경 소재로 집을 지은 펜션도 운영하고 있는데, 벽난로와 영국 오리지널 엔틱가구로 꾸며 이국적인 인테리어를 자랑한다.

문의: 전남 나주시 영산동 306-11 / 061-332-2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