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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역사 교실 ⑥ : 아시아 금융 위기

 

미국의 경제가 나아지고 있고, IMF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유럽의 금융위기도 조금씩 해결의 기미가 보인다고 합니다.

최근의 글로벌 경제 위기는 유럽과 미국에서 시작했지만 처음 있었던 경제 위기는 아니죠. 과거에도 유럽에서 시작된 대공황, 블랙먼데이 등의 위기도 있었죠.

 

 

 

그리고 우리나라 국민들도 잊을 수 없는 경제 위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1997IMF 외환위기.

이 때 당시 우리나라와 함께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금융위기를 겪었습니다. 동남아시아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동북아시아로 확산되어 전 세계 경제를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오늘 경제학 역사교실에서는 아시아 금융 위기에 대해서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아시아 금융 위기의 원인


위기 이전 아시아 경제는 공통적으로 금융부분의 취약성이 심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취약성을 개선하지 않은 채 1990년대 이후 대규모 외자유입이 이루어지자 금융부문의 취약성은 심각한 문제로 발전했죠. 특히 외국자본 유입과 관련된 유동성 불일치와 통화불일치 문제는 위기를 심화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위기를 맞이한 국가들에게 공통된 또 다른 특징은 환율이 고평가되어 있었고 대부분 고정환율을 유지했다는 점입니다. 고평가된 환율은 경상수지적자의 주범인 동시에 과대한 대외 차입을 조장하는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았죠.

 

결국 1997 7월 태국에서 통화 위기가 발생한 이후 아시아 지역에 대한 국제투자자들의 불신과 각국의 경쟁적 평가절하 등이 전염효과를 발생시켰고 이는 금융위기의 확산에 기여하게 되었습니다.

 

 

 

# 아시아 금융 위기가 초래한 그 피해는?


 

1997 7월 태국 바트화의 평가절하에서 시작되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과 한국을 희생시킨 아시아 위기는 1992-93년의 EMS 위기와 1994-95년 멕시코 페소 위기에 이어 1990년대 발생한 세 번째 주요 통화위기입니다.

 

아시아 금융 위기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던 경제들을 덮쳤고 역사상 최대 규모의 IMF 금융구제를 낳았죠.

 

이 위기는 1982년 외채위기 이후 개도국을 엄습한 가장 심한 금융위기이며 가장 예측이 힘들었던 위기였습니다. 종전에 국제투자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투자지역으로 인식되어왔지만, 외국자본의 급속한 이탈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겪었으며, 관련국들은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였습니다.

 

아시아 위기는 이전의 통화위기에서와 달리 국내 자산시장의 붕괴, 광범위한 은행 파산, 수많은 기업의 부도, 예상보다 심한 실물경제 침체 등 훨씬 더 복잡하고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특히 위기가 진원지인 동남아 경제와 밀접한 경제적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던 우리나라를 강타한 데 이어 1998년에는 러시아와 브라질로 번지면서 세계경제공황에 대한 우려를 낳기도 했습니다.



 

 

 

아시아 위기는 너무나 갑작스럽고 충격이 컸던 만큼 그 원인에 대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위기의 원인이 경제의 기초여건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금융패닉 현상인지 하는 논쟁이었죠.

 

기초여건을 강조한 이로는 크루그먼(Krugman)이 대표적인데, 그는 도덕적 해이를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지목했습니다.

 

반면 삭스(Sachs)는 아시아 경제가 기초여건이 취약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위기를 정당화시켜줄 만큼 크지 않았다고 보고 위기의 본질적 요소로 금융패닉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 버블을 키워온 도덕적 해이에 대한 주장, 크루그먼


크루그먼을 비롯해서 도덕적 해이가 아시아 금융위기를 자초했다고 주장한 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금융중개기관들의 역할에 주목하여 환율과 화폐 측면보다는 실물자산의 수요와 가격결정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시아 위기를 설명하는 데 보다 유용한 것으로 믿고 있죠.

 

그래서 아시아 위기에 대한 논의를 도덕적 해이와 연관 짓고 있습니다. 그들이 논의한 주제는 주로 암묵적 보증의 역할, 과다차입을 낳는 도덕적 해이의 역할, 그렇게 만들어진 불건전한 금융시스템의 내부붕괴와 자산가치 폭락 등이었죠.

 

이들이 아시아 금융 위기에서 패닉의 발생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패닉이 발생한 전제조건이 위기 전 수년간의 잘못된 정책에 의해 생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위기의 핵심은 대규모 외국자본의 이동 때문이다.” - 삭스

 

삭스와 몇몇 학자들은 아시아 금융 위기의 핵심이 패닉에 취약한 금융시스템에서 대규모 외국자본의 이동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거시 및 미시적 수준에서 아시아 경제를 에워싼 많은 근본적인 문제와 취약한 기초여건이 있었다는 것에는 인정을 했지만, 그 불균형은 1997년의 위기를 초래할 만큼 크지 않았다고 보았죠.

 

그보다는 국제투자자들의 패닉과 위기 발발 당시 아시아 정부들의 정책실수, 그리고 잘못된 IMF 구제 프로그램이 외국자본의 철수를 완전한 패닉으로 전환시켜 위기를 필요 이상으로 심화시켰다고 보았습니다.





# 우리나라 금융 위기의 원인


우리나라가 금융 위기를 겪게 된 원인은 당시 태국, 홍콩,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의 연쇄적 외환위기 속에 대한민국 정부의 외환관리정책의 미숙과 실패 때문입니다.

 

정상적 경제활동을 위한 국가의 외환보유고를 유지 관리하고 책임을 지는 행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죠. 마치 기업의 부도와 마찬가지로 외환보유고가 하락하여 외환지급불능사태의 위기를 초래하였으며, 이로 인해 국가신용도가 하향 조정되었고 원화가치의 환율이 급격히 하락하는 등 연쇄적으로 국제적 경제활동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습니다.

 

외환보유고 관리 실패와 더불어 과도한 해외 단기차입금으로 무너지는 기업이 속출했고, 환율 운용정책을 실패하면서 외환위기가 전면적으로 가시화되었죠. 한보, 기아와 같은 대형 그룹들이 부도사태를 겪으면서 금융기관의 부실 역시 표면적으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부실 경영을 하던 은행과 생명보험사들이 줄줄이 퇴출되었습니다.

 


# IMF 외환위기의 극복

 

 

외환위기는 정권 교체를 야기했고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서 IMF를 극복하는 일환으로 외국인 투자 자율화 정책, 대기업을 각 기업으로 독립시키는 구조조정을 단행, IT 육성정책, 신용카드 정책, 정리해고제를 도입했습니다.

 

IMF 2년을 겪으면서 우리나라는 경제지표상으로 실업률을 제외하고 성장·물가·경상수지 등에서 전반적으로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거의 회복했습니다. 주가는 외환위기 이전 수준보다 높아졌고 금리는 낮아졌으며 환율도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내려 앉았죠


외환위기의 영향으로 1998년에 급속하게 내수가 위축되면서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지만 1999년 들어 예상보다 훨씬 빠른 회복속도를 보이며 두 자리수 성장을 바라볼 정도였습니다.

 

한국 경제는 IMF 위기를 겪은 지 2년 만에 '고성장-저물가-경상수지 흑자'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또한 1997 IMF 구제금융 요청 당시 대한민국의 외채를 갚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이 소유하던 금을 기부해 전국 누계 약 350만 명이 참여한 이 운동으로 약 227톤의 금이 모아져 세계적 이슈가 되기도 했죠^^

 

이러한 금모으기 운동은 한국경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긍정적 평가를 이끌어 내는데 일조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2000 12 4일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IMF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낸 대한민국은 3년 만에 외환위기 극복이라는 신화로 세계를 놀라게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