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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생활 정보/이슈 & 트렌드

사물을 보는 새로운 창, 정물화 - 장규리의 미술세상

 

 [라헬 라위스, 꽃과 벌레]

 

 

 

만지면 물방울이 톡 떨어질 것만 같은 싱싱함,

부드러운 벨벳인양 짧고 부드러운 잔털이 어린 표면

화창한 계절을 그대로 담고 있는 듯 생생히 빛나는 다채로운 색감들.

그림 속 꽃은 마치 실물인 양 오롯이 생동하는 아름다움을 뽐냅니다.

 

 

 

 

[아구스티노 조제 다 모타, 파파야, 수박, 캐슈가 있는 정물]

 

 

 

마치 실물인 양 묘사된 수박과 파파야의 모습은 어떤가요?

싱그러움을 그득히 담고 있는 껍질은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고

한 입 베어 물면 달콤한 과즙이 입 안 가득 넘쳐흐를 것만 같습니다.

 

 

 

시각적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촉각, 미각적 즐거움까지 선사해주는 정물화

본래 장구한 서양미술의 역사에서 하위의 장르로 취급되었습니다.

 

역사적인 사건을 묘사함으로써 후대까지 길이 남을 교훈성을 전달해주는 역사화,

세상을 창조한 거룩한 신의 섭리를 오롯이 담은 종교화와는 달리

한낱 사물들을 묘사한 이러한 그림은 인간에게 깨달음을 주는

어떤 의미도 담고 있지 않은 하찮은 것으로 간주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모든 정물화가 그런 편견에 부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카라바조, 과일바구니(basket of fruit), 1598]

 

 

 

초기 바로크의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인 카라바조의 1598년 작품,

이탈리아 최초의 정물화인 과일바구니(basket of fruit)가 그 예입니다.

 

 

 

앞서 설명 드린 것처럼 어떠한 이야기나 교훈성도 담고 있지 않기에

속된 그림으로 평가되었던 이 장르는 당대 최고의 예술도시였던 이탈리아에서는

특히 선호되지 않던 주제였습니다.

 

그러나 바로크시대로 접어들면서

종교화, 역사화의 밑에 자리하며 부속품과 같이 취급되던 정물화가 이전보다 널리 선호되었으며

많은 화가들에 의해 표현되었고, 카라바조 역시 다양한 사물들을 표현하며

그 속에 많은 상징성을 담아놓았습니다.

 

 

 

 

Tip! 바로크시대의 불가사의하고 매혹적인 화가 '카라바조'는 누구?

카라바조 (Caravaggio) 1571-1610

 

 

본래 이름은 미켈란젤로 메리시. 카라바조는 그가 태어난 마을의 이름이다.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의 대가인 그는 반 고흐 다음으로 '광팬'이 많은 화가로 여겨질 정도로 강한 명암대비와 강렬한 감정이 느껴지는 화법으로 후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성 마테오의 부름>, <로레토의 성모> 등의 작품을 통해 카라바조는 20대 젊은 나이에 이미 로마 최고화가의 반열에 올랐으나, 테니스 경기도중 싸움에 휘말려 사형을 선고 받고 도망자의 삶을 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에 의해 살해된 기구한 인생스토리로 더욱 유명하다.

 

작품의 내용과 의미는 물론 화법에서도 매우 사실적이고 상식을 깬 리얼리즘이 카라바조 그림의 특징. 지난 2010년은 카라바조 탄생 400주년으로 세계 각지에서 카라바조를 기념하는 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리기도 했다.

 

 

 

그림 속 과일은 익을 대로 익어 진한 향기를 뿜어내는 듯 보이고 잎사귀 역시

그 싱싱한 푸른빛을 잃고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그 표면의 흠집 하나에서부터

껍질에 어린 물방울에 이르기까지 매우 사실적이고 섬세합니다.

작가의 뛰어난 표현기법이 유감없이 발휘된 이 작품의 과일 하나하나에는

종교적 상징성이 녹아있습니다. 물론 실제 작가가 이러한 의미들을

과실 하나하나에 담아놓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미술사학자들은 사과는 선악과,

석류는 그리스도의 부활, 포도는 예수의 성만찬을 의미한다고 해석하기도 하지요.

 

쉽게 익고 부패하는 과일을 통해 인생과 자연의 불안정함을 나타내었다고 간주되는 이 그림은

뛰어난 테크닉으로 보는 이를 매료시킬 뿐만 아니라 주제에 다양한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여

단순한 사물을 나열한 장르에 불과하다는 정물화에 대한 편견을 무너뜨립니다.

 

 

 

바로크 시대에는 카라바조의 작품처럼 다양한 정물들로 하여금 인생무상,

혹은 종교적 정신성을 상징화한 '심오한 작품들'이 많이 제작되었습니다.

 

그림들이 심오함을 가지고 있던 가지고 있지 않던 간에

바로크 시대의 정물화가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에게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과 열린 마음을 요구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일상의 평범함에 취해 주변의 모든 것들을 항상 똑같은 자리에 있는 것,

변함없는 진부한 것으로 간주했던 과거의 사고를 버리고

바로크 시대의 정물화를 보듯 남다른 시각을 가지고 새로운 의미를 찾으려 한다면

보다 새롭고 창조적인 마음가짐으로 일상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