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트러스트군, 치킨게임이 무슨 말인가요? (양00 님, 32, 서울 노원구)
최근에 신문기사에서 세계 반도체 3위 업체인 엘피다가 파산신청을 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기사에서는 D램 반도체 시장 내 치킨게임에서 엘피다가 패배함으로써 도산하게 되었고, 일본 경제계는 충격에 휩싸였다는 기사였는대요. 기사를 읽으면서 ‘치킨게임’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이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몰라서 기사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어요.
친구한테 물어봐서 대충 이해하긴 했는데, 트러스트 군이 이해하기 쉽게 자세히 알려주시면 안될까요?
1955년 제임스 딘(James Dean)이 주연한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 자동차 게임 장면이 나옵니다.
한밤 중에 도로의 양쪽에서 두 명의 경쟁자가 자신의 차를 몰고 정면으로 돌진하다가 충돌 직전에 핸들을 꺾는 게임이죠. 이 게임은 먼저 핸들을 꺾는 사람이 지는 게임입니다. 이와 유사하게 철로 위에 나란히 누워 있다가 기차가 달려올 때 먼저 철로에서 빠져나가는 사람이 지는 게임도 있는데, 드라마나 영화에서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먼저 핸들을 꺾거나, 먼저 철로에서 벗어나는 사람을 겁쟁이로 치부하는 것이죠.
이와 같이 극단적으로 치닫는 게임을 치킨게임(chicken game)이라고 부릅니다.
치킨게임은 1950년 대에 유행하던, 앞에서 설명한 자동차 충돌 게임에서 먼저 핸들을 꺾는 사람을 치킨이라 부른 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영어로 치킨은 ‘닭’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겁쟁이’를 뜻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 치킨게임 끝에 파산한 세계 3위 엘피다
최근에 치킨게임의 희생기업이 발생했습니다. 바로 D램 반도체 부문 세계 3위 기업 엘피다가 파산신청을 한 것이죠.
자세한 배경을 살펴보죠. 파산신청을 하기 전부터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엘피다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등 우리나라의 동종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끝없이 밀려나면서 자금력이 고갈된 상태였습니다. 일본 정부 은행과 민간은행들이 가담해 총 1300억 엔의 공적 자금을 투입해 일종의 자금력 경쟁인 치킨게임을 지원했으나 결국에는 거대한 빚더미만 남긴 채 자멸하고 말았죠.
전문가들은 이미 치킨게임에서 엘피다를 지원했던 미국의 마이크론과 대만의 난야 등도 오래 전부터 입장을 바꾸었고, 엘피다의 거래선들까지 자금지원에 인색해짐에 따라 엘피다가 예정된 파산의 수순을 밟아 왔다고 분석했습니다.
엘피다의 패배로 일본 경제계가 충격에 빠진 반면,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들은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최대 경쟁자인 엘피다의 낙마로 국내 양대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당분간 승승장구를 지속할 전망이죠. 당장 오랜 가격인하 경쟁의 주적이 사라지면서 가격회복세가 이어질 것이며, 불필요한 양산경쟁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작년 말부터 D램 가격은 바닥을 치고 있었지만, 현재는 상승추세인 것을 보면 이미 효과가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D램 세계시장 점유율은 2007년 27.7%에서 지난해 45%까지 대폭 늘어나는 추세죠. 이 같은 추세는 엘피다의 추락을 호기로 앞으로 이 시장에서 경쟁 없는 독주시대에 들어설 것이란 전망이 우세합니다.
# 1.8GHz 주파수를 놓고 벌어졌던 SKT-KT 간의 치킨게임
작년에는 1.8GHz(기가 헤르츠) 주파수 대역을 놓고 국내 대표 이동통신사인 SKT와 KT 간의 치킨게임이 있었습니다. 결과부터 알려드리자면 마지막까지 버틴 SK텔레콤이 1.8GHz 대역 주파수를 품에 안았죠. 처음으로 경매방식을 통해 벌어진 이번 치킨게임에서 SKT가 9950억 원을 제시하면서 KT는 입찰경쟁 포기 선언을 하면서 마무리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주파수 경매 첫날, 1.8GHz의 최초 입찰가는 4455억 원이었다. 그러나 양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8일 사이에 경매가가 1조원에 육박하는 9950억 원까지 치솟았죠. 상대가 먼저 포기하기만을 바라며 절벽으로 차를 모는 ‘치킨 게임’인 셈이었습니다.
결국 KT가 먼저 ‘입찰유예’를 선택하며 숨 고르기에 들어갔고, 결국에는 1.8GHz 대역 대신 함께 경매에 나왔던 800MHz 대역을 사기로 결정하면서 치킨게임은 끝났습니다.
앞서 D램 반도체 시장에서의 치킨게임 때문에 D램 가격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고 알려드렸습니다. 그렇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D램 가격이 계속해서 저렴해지면서 오히려 좋은 측면으로 작용했었겠죠? 치킨게임은 이 게임이 진행중인 시장에 있는 소비자들에게도 결코 이로운 것은 아닙니다.
저축은행들의 수신금리 치킨게임을 살펴봅시다. 저축은행은 무작정 특판예금을 팔지 않습니다. 특판예금의 경우, 금리가 타사에 비해 높아야 고객들이 더 많이 찾겠죠. 그렇지만 예금을 많이 유치하기 위해서 저축은행에서 서로 경쟁적으로 금리를 올린다면 문제가 발생하고 맙니다. 예금의 금리가 오른 것에 비례해서 결국 이들이 판매하는 대출상품의 대출금리도 상승하기 때문입니다. 즉 자사의 건전성이 확보되고 나면 이들은 결국 마진율에 신경을 쓰게 되고, 이는 해당 저축은행과 거래를 하는 소비자들의 피해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만약 이들이 제시하는 대출금리를 감당하지 못하는 소비자는 파산하게 되고,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한 저축은행의 부실 원인으로 되돌아옵니다.
무조건적으로 치킨게임이 소비자에게 이롭지 않다는 거 잘 아셨죠??
오늘은 치킨 게임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요즘 무한 경쟁이 심화되면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치킨 게임. 기업간의 필요 이상의 경쟁은 언젠가 소비자에게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 잘 아시고 그들의 경쟁을 지켜봐야겠습니다.
'대신 금융 경제 > 금융경제 상식/용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레샴의 법칙이 무엇인가요? (0) | 2012.04.16 |
---|---|
경제학 역사 교실 ④ : 1차, 2차 오일쇼크 (0) | 2012.04.12 |
경제학 역사 교실 ③: 세계 대공황 (0) | 2012.04.05 |
정크 본드가 무엇인가요? (0) | 2012.04.02 |
경제학 역사 교실 ②: 거시 경제학 편 (0) | 2012.03.30 |